[THEME STORY] 미리보기 - 2026 동시대미감전 <김덕용: 빛과 결, 自生之美> | 빛과 결로 그려 낸 순환의 우주
성남큐브미술관의 대표 기획전 ‘동시대미감전’은 그간 독창적인 작업 세계를 구축해 온 작가들을 조명하며 우리 시대의 주요 예술적 담론을 시민과 함께 나누어 온 전시다. 올해 동시대미감전에서는 회화 작가 김덕용의 개인전 <빛과 결, 自生之美(자생지미)>를 선보인다.
글 백혜원 성남문화재단 전시기획부
김덕용, <차경-Homing>, 2025, Dancheong and mixed media on wood, 240×180cm
흔히 미술에서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때면 먹의 번짐이 살아 있는 수묵화나 실경(實景)을 담아낸 진경산수화를 떠올리곤 한다. 또한 그 흐름이 과거 특정 거장들의 화풍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김덕용은 이러한 고정된 관념이 오히려 한국 미술이 지닌 무궁한 가능성을 가로막을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미술의 장르가 특정 양식과 기법으로 고착되는 것에 끊임없는 질문을 던져 왔다.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상대적으로 대중성과의 접점을 확보하기 어려운 조건에서도 한국인으로서 이러한 문제를 고민하며, 틀에 갇히지 않은 독자적인 한국 회화의 흐름을 모색해 왔다. 작가에게 한국적 미감은 기술적 선택이 아닌 정체성에 기반한 태도이며, 그의 작업 전반은 이 인식 위에서 전개된다.
김덕용, <우주산수>, 2025, Mother of pearl and mixed media on wood, 130×160cm
나무와 자개로 그려 낸 한국적 조형 언어
김덕용의 작업은 재료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와 실험, 그리고 오랜 시간 축적된 인고의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작가는 종이나 캔버스 대신 세월의 흔적이 밴 나무를 직접 깎고 다듬어 화면으로 삼는다. 그 위에 단청 기법으로 채색을 더하고, 나전칠기 방식으로 자개를 붙인다. 재와 숯을 활용해 풍경과 우주의 이미지를 구성하기도 한다.
나무는 오랫동안 인간의 삶의 공간을 이루어 온 재료이며, 표면에 드러난 나뭇결에는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김덕용의 나무 작업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건축과 장식 문화, 특히 단청에 대한 작가의 관심에서 출발했다. 대학원 졸업 논문에서 ‘나무가 곧 종이다’라고 언급했을 만큼 작가는 나무를 회화의 바탕으로 인식한다. 선례가 거의 없는 작업 방식이었지만 다양한 연구와 시행착오를 거쳐 직접 목재를 짜고 그 위에 작업을 이어 오며 자신만의 방법을 구축해 왔다. 이러한 과정은 재료가 지닌 시간의 깊이와 물성을 현대 회화 안으로 끌어들이며, 한국 회화의 가능성을 자생적으로 확장하려는 작가의 신념을 보여 준다.
자개 역시 작가의 작업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나무가 시간성을 상징한다면, 자개는 작가에게 그리움을 환기하는 매개체에 가깝다. 고향 집의 나전 가구와 어린 시절 즐겨 하던 구슬치기 같은 개인적 기억에서부터 밤하늘의 별빛에 이르기까지, 자개는 화면 속에서 다층적인 의미로 펼쳐진다. 관람자의 시선과 빛의 정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개의 색과 반짝임은 화면에 깊이를 더하고, 변화하는 감각적 층위를 만들어 낸다. 나뭇결을 따라 표면을 정리하고, 그 위에 자개를 올리는 반복적 행위 속에서 물질은 단순한 재료를 넘어 시간과 기억을 품은 화면으로 변모한다.
김덕용의 작업에는 삶의 이동과 기억이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전라남도 순천에서 태어나 광주와 서울을 거쳐 현재 성남 분당구에 정착하기까지, 작가의 삶은 여러 시간과 공간을 지나며 축적되어 온 여정과 같다. 숲에서 온 나무와 바다에서 온 자개가 하나의 화면 안에서 만나 새로운 형상을 이루는 모습은 어쩌면 작가가 지나온 삶의 궤적과도 비슷할지 모른다. 이러한 경험은 작품 속에서 생명의 탄생과 기억, 존재와 부재, 그리고 삶의 순환에 대한 사유로 이어지며 작가의 조형 세계를 이루는 중요한 토대가 된다.
김덕용, <玄-우주를 품다>, 2022, Mother of pearl and mixed media on wood, 180×195cm
생명에서 우주로 이어지는 시간의 기억
이번 전시 <빛과 결, 自生之美>에서는 수십 년간 한국미에 천착해 온 김덕용의 작업 세계를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다. 특히 모든 존재는 탄생 이후 자연, 곧 우주로 나아갔다가 다시 돌아온다는 작가의 사유를 ‘순환의 산수’의 개념으로 담아낸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먼저 시간과 기억의 장면들이 펼쳐진다. 한옥의 구조나 책의 이미지, 빛처럼 반짝이는 구슬의 형상은 유년 시절의 순수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이러한 장면들을 <화양연화>라는 제목 아래 가장 맑고 영롱했던 순간의 기억으로 풀어낸다. 나무의 결 위로 스며드는 빛과 이미지는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감각이 겹치며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시간과 기억은 곧 생명의 기원에 대한 사유로 이어진다. 달항아리와 여인의 형상은 생명의 탄생과 순환을 상징하며, 인간과 자연이 맺어 온 오래된 관계를 환기한다. 이는 작가가 오랫동안 탐구해 온 한국적 미감의 출발점이자 삶의 근원을 바라보는 시선이기도 하다.
이후 귀소(歸巢)의 의미를 떠올리게 하는 바다의 풍경이 나타난다. 나무와 자개가 만들어 내는 공간 속에서 바다는 생명의 또 다른 시작이자, 다시 돌아가게 되는 근원의 장소로 그려진다. 작품 속 바다는 특정한 지리적 장소라기보다는 원형적인 심상의 이미지에 가깝다. 자연을 화면 안으로 끌어들이는 ‘차경(借景)’의 방식으로 작동하며, 인간과 자연이 하나의 흐름 속에서 이어져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이후 이어지는 작품들에서는 존재와 부재, 삶과 죽음의 경계를 성찰하게 하는 풍경이 펼쳐진다. 숯과 재의 가루로 표현된 산수(山水)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라지고 남겨지는 것들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변화와 소멸, 그리고 그 속에서 이어지는 삶의 흔적이 고요한 화면 위에 드러난다.
마지막으로 별과 우주의 형상이 등장하며 의미는 더욱 확장된다. <우주산수(宇宙山水)> 속 반짝이는 빛의 궤적은 생성과 소멸이 반복되는 자연의 질서를 떠올리게 하며, 인간의 삶 또한 그 거대한 순환 속에 놓여 있음을 암시한다. 작가가 그려 내는 세계는 결국 생명이 시작되고 다시 돌아가며 이어지는 순환의 우주로 귀결된다.
김덕용의 작품들은 서로 다른 시간의 층위를 이루며 전시 공간 안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그간 명확히 정리되지 않았던 ‘한국미’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구조화하고자 했다. 그가 말하는 한국미의 확장은 결국 귀소의 미학과 맞닿아 있다. 과거의 따뜻한 기억과 삶의 모습, 그리고 자연과 우주로 이어지는 순환의 세계 속에서 김덕용의 회화는 고유한 빛을 발한다. <빛과 결, 自生之美>는 이러한 빛과 결이 만들어 내는 장면들을 따라가며 우리의 존재와 삶의 흐름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하나의 계기가 될 것이다.
2026 동시대미감전 <김덕용: 빛과 결, 自生之美>
일시 | 4월 10일(금)~6월 7일(일)
장소 | 성남큐브미술관 기획전시실
문의 | 031-783-81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