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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의 예술가] 하다 아트컴퍼니 연출가 이준호 | 자유로운 몸짓을 통해 경계를 벗어나다
하다 아트컴퍼니는 정해진 질서에서 어긋난 작은 움직임이 새로운 리듬을 만들어 낸다고 말한다. 집단의 패턴 속에 갇혀 있던 몸이 퍼포먼스로 확장되어 가는 과정에서 관객은 잊혔던 감각을 차츰 회복해 간다. 그들의 피지컬 시어터가 이해를 넘어 경험으로 남는 이유다.
글 김호경 객원기자 | 사진 최재우
성남과 인연이 깊으신 것으로 압니다. 성남에서 어떤 작업을 이어 오셨나요?
2016년에 동서울대학교 연기예술학과를 같이 다녔던 친구들과 연습실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학교와 가깝고 서울에 비해 비용이 적게 드는 성남시 수정구의 복정동에 자리를 잡았어요. 같은 해 ‘판교 거리예술 축제’에 참여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와 서민준 배우를 포함한 3인이 테크노밸리 일대에서 <출근길>이라는 거리극을 선보였어요. 점심시간 무렵이라 직장인들이 많았는데 아무래도 IT 계열에 종사하는 분들이셔서 공연, 특히 거리극과는 연관이 적었죠. 그래서인지 가까이 다가오지는 않으시고 한 20m쯤 떨어진 곳에서 저희를 힐끗 보시더라고요. 이후 ‘샛고개이음제’ ‘친친콘서트’ 등에 이어 작년에는 ‘성남페스티벌’의 지역 예술인으로도 함께했습니다.
피지컬 시어터(Physical Theater, 신체극)가 익숙하지 않은 분들도 계실 텐데요, 최근 집중하고 계신 이 장르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독일의 3대 종합예술대학교로 꼽히는 폴크방 예술대학교에는 피지컬 시어터 학과가 있습니다. 그곳의 교수님, 예술가들과 교류할 기회가 있었는데 세미나에서 그런 얘기를 하시더군요. “피지컬 시어터는 우산이나 다름없다, 그 안에 마임, 서커스, 뮤지컬 등 몸을 중심으로 하는 무엇이든 넣을 수 있다”라고요. 유독 한국에서 피지컬 시어터의 정의를 많이 물어보세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정확히 파악하려는 우리의 성향이 묻어나는 거겠죠. 저는 그런 질문에서 보다 자유로워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비뇽 국제 연극제에 갔을 때에도 비슷한 고민을 했어요. 프랑스 남부 아비뇽에는 100곳이 넘는 극장이 들어서 있다고 합니다. 한 곳에서만 매일 10여 개의 공연이 오르고요. 그러면 날마다 1,000개 이상의 공연이 행해지는 거잖아요. 당시 무수한 공연의 형태를 보면서 제 편협했던 시각을 절감했습니다. 그리고 제 취향이 몸을 쓰는 예술이라는 걸 정확히 인지할 수 있었고요.
작년 가을 성남아트센터 앙상블시어터에 올랐던 <유랑>이 여전히 주목받고 있습니다. 오는 5월에 열리는 부산국제연극제의 K-Stage 경연작으로 선정되셨다고요.
크게 두 가지 의의가 있는데요, 하나는 성남에서 타지로 무대가 확장된 것, 다른 하나는 초연에 그치지 않고 재연을 하게 된 것입니다. 보통 창작 지원을 받아 작품을 만든다고 해도 초연 이후에 다음 기회를 얻기는 정말 힘들거든요. <유랑>의 경우 성남문화재단의 2025년 성남예술인 예술창작활동 지원사업을 통해 제작했기 때문에 앙상블시어터에서는 무료로 공연을 진행했었는데요. 이번 부산국제연극제에서는 티켓을 판매하기 때문에 정식으로 첫 공연을 올린다는 마음으로 절실하게 임하고 있습니다.
K-stage의 경연작으로 선정된 데는 시대의 흐름이 반영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국제연극제의 특성상 심사 위원들이 해외 감독들로 구성되었을 텐데, <유랑>에 담긴 한국적 요소를 알아보고 매력적으로 느끼셨을 듯합니다. 등장인물인 놀부, 팥쥐, 나무꾼, 변학도, 양치기 소년 그리고 저승사자가 나름대로의 역할을 해 준 셈이죠.
성남문화재단의 2025년 성남예술인 예술창작확동 지원사업 선정작 <유랑>
그렇다면 <유랑>은 어떤 작품인가요?
다섯 살짜리 첫째 아들과 놀다 보면 늘 권선징악이 있는 이야기를 접하곤 합니다. 평소처럼 집에서 악당놀이를 하는데 문득 이상하더라고요. 아들한테 “왜 아빠만 악당이야? 이번엔 네가 해 봐”라고 말했더니, 아이가 “나는 악당이 아니지”라며 순수한 표정을 짓는 거예요. <유랑>은 이 일상적인 대화에 착안했습니다.
작품에는 전래 동화 속 ‘악당’이라고 불린 이들이 등장합니다. 앞서 언급한 나무꾼, 팥쥐, 변학도, 양치기 소년, 놀부 그리고 저승사자인데요, 이 악당들에게 이탈리아 가면 희극인 코메디아 델라르테(Commedia dell'arte)에 나오는 전형적인 인물군의 신체적, 성격적 특징을 투영해 보았어요. 그렇게 탄생한 등장인물을 하다 컴퍼니의 음악과 퍼포먼스 디렉팅을 맡고 있는 서민준 배우와 함께 구체화된 설정 안에 넣어 보았죠. 천 년째 유랑 극단이 되어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떠돌며 웃음을 만들어 내는 형벌을 받고 있다든가, 동양을 넘어 서양에도 이르게 되었다든가 하는 이야기로요.
결말은 저를 향한 메시지에 가까워요. 등장인물들은 처음엔 ‘형벌’로 공연을 하다가 마지막에는 본인들의 ‘의지’로 공연을 지속합니다. 저에게도 공연이 버거울 때가 있어요. 나의 의지로 공연계에 뛰어들었지만, 이 일이 앞으로도 괜찮은 걸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럴 때 <유랑>이 저를 다잡아 주었어요. 제 선택으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게 되리라, 다시 한번 믿어 보는 거죠.
작품에 관해 연출적 견해를 덧붙이자면, 저는 비어 있는 무대를 선호합니다. 빈 공간이 관객의 사유로 채워지길 바라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세트가 아닌 조명을 주로 활용했는데요, <유랑>이 선과 악을 다루고 있는 만큼 흐릿한 조명으로 그 모호한 경계를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공연 마지막에 이런 질문이 던져집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악당이었을까? 다시 기회가 온다면 달라질 수 있을까?” 악당의 범주를 넓혀 보면 누구나 한 번쯤 해 볼 법한 고민이 아닐까 싶습니다.
누구나 소소한 잘못을 저지르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악당의 기준은 사실 명확하지 않아요. 끔찍한 범죄 행위 같은 ‘절대악’을 제외하고 평범한 일상에서만 본다면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개인에 따라 악의 기준은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저 역시 여전히 악이 무엇인지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타인에게 불쾌감, 불편함, 피해를 주는 행동은 지양되어야 하겠죠. <유랑>이 스스로 기준을 찾아가는 계기가 되어 준다면 참 좋겠습니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그 기준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겠지만, 어쩌면 이 논쟁이 더 나은 곳을 향해 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곧 <학교>라는 작품도 선보일 예정이시죠?
성남문화재단의 2026년 성남예술인 예술창작활동 지원사업 선정작으로 제작하게 될 작품인데요, <유랑>과 마찬가지로 일상에서 비롯된 작품입니다. 대학에서 연기를 가르치고 집에서 미취학 아이들을 키우며 두 종류의 몸을 봅니다. 미취학 아이들의 몸은 지극히 즉흥적이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반면, 초중고등학교를 거쳐 온 학생들의 몸은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어요. 수업 시간에는 가만히 의자에 앉아 있어야 하고, 짧은 쉬는 시간 안에 화장실을 다녀와야 하는 통제가 12년간 지속되다 보니 당연히 몸이 굳어 버리는 거죠. 실제로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이 ‘자유롭게 해 보라’라는 말을 가장 어려워하는 걸 보면서 학교가 어떻게 하면 각각의 개성을 존중해 주는 공간이 될 수 있을까, 함께 고민해 보고 싶어 학교를 무대로 가져와 보기로 했습니다.
2018년 초연한 넌버벌 퍼포먼스 <사운트 팩토리>를 극장 버전으로 재구성한 피지컬 시어터 <오피스>
이번 작품이 ‘읽히는’ 공연이 되지 않았으면 하신다고요?
제가 지향하는 공연은 ‘읽히는 것’이 아니라 ‘지각되는 것’이거든요. 읽히는 공연은 텍스트를 전면에 내세우며 이미 영화나 드라마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철학자인 모리스 메를로퐁티가 쓴 『지각의 현상학』에서는 세상이 살로 이루어져 있다고 얘기할 정도로 몸을 강조합니다. 즉, 관객이 공연을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 체감하게 하는 게 저희의 역할인 거죠.
커다란 비닐봉지 안에 들어간 배우들이 데굴데굴 굴러오면서 <학교>의 막이 오릅니다. 자궁 안을 형상화한 장면인데, 관객들은 이를 보는 순간 답답함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태아에겐 엄마 뱃속이 가장 편안한 곳이잖아요. 이런 모순을 자각하게끔 유도하는 겁니다. 배우들이 갑자기 문밖으로 뛰쳐나가는 장면도 있어요. 갑자기 배우들이 나가 버리면 관객들은 처음엔 곧 돌아오겠지 싶어서 흥미로워하다가 약 3~4분쯤 지나도 아무도 돌아오지 않으면 오히려 당황하고 두리번거려요. 이 장면에서 관객들은 어릴 적 교실에 덩그러니 남아 있던 감각을 복기하게 됩니다.
아직 공연에 추가할지 고심 중인 장면도 있습니다. 무대 전면에 커다란 종이를 붙여 두었다가 느닷없이 찢어 볼까 싶기도 해요. 관객들은 깨끗하고 반듯한 종이를 보면서 그걸 찢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할 거예요. 그러다가 종이가 관객을 뒤덮어 그들도 함께 종이를 찢었으면 좋겠어요. 무언가 예상을 벗어난 의외의 행위로 관객에게 해방의 경험을 느끼게 하고 싶어요.
자신의 몸을 재인식하고 자유로운 감각을 회복하려면 어떤 시도를 해 볼 수 있을까요?
대부분 자신의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에 골몰하죠. 전자에 신경을 쓰다 보면 몸이 바뀝니다. 예를 들어, 아침마다 어느 날은 오른쪽으로 일어나 보고, 다음 날은 왼쪽으로 일어나 보고, 또 다른 날은 다리를 접었다가 확 차올리면서 일어나 보고, 이렇게 놀이하듯 접근해 보세요. 가끔 저희 배우들은 연습실에서 ‘느리게 달리기’를 합니다. 한쪽 벽에서 반대편 벽까지 가장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 꼴찌가 되는 거예요. 달리는 행위를 느리게 한다니 모순적이죠. 초 단위로 오가던 거리를 30분 남짓 느릿하게 달리는데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온몸에서 땀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옆에서 말을 걸어도 대꾸하지 않아요. 다들 자신의 몸에, 그 몸의 움직임에 온전히 몰두한 상태가 되거든요.
<유랑> <학교> 그리고 이전 작품인 <오피스>까지, 모두 ‘편견으로부터의 탈피’라는 주제가 관통하는 듯합니다.
공연 연출가의 루틴이 일반적인 직장인과 다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세상이 말하는 보편적 삶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되더라고요. 일반적인 근무 시간을 따르지 않고 일정하게 월급을 받지도 않으니까요. 마치 세상의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느낌이에요. 직장인들은 일이 너무 바빠서 깊은 생각에 빠져들기 어렵잖아요. 저와 같은 예술가들이 ‘삶에는 이런 것도 있고, 저런 것도 있잖아요!’라며 대안을 상기시켜 줄 수 있는 것 같아요. 인생에 균형을 맞춰 주고 자꾸 다른 시각을 부여하는 거죠.
하다 아트컴퍼니의 작품들은 아동극이 아닌데도 관람 연령이 꽤 낮은 편입니다.
저희 작품들이 대사에 무게를 두지 않기 때문에 4세나 7세의 어린 관객들도 마음껏 관람할 수 있어요. 특히 <유랑>의 경우 전래 동화가 부모와 자녀 사이의 매개체가 되어 줍니다. 아이들이 등장인물에 관해 물어보면 어른들은 놀부가 누군지, 팥쥐는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등을 충분히 얘기해줄 수 있어요. 2022년에 성남아트센터에서 공연했던 <너는 빛이 되어 우주를 둥둥>은 0세부터 99세까지 관람이 가능했습니다. 당시 팬데믹으로 아쉬운 부분이 있었지만, 앞으로도 관람의 폭을 꾸준히 넓혀 나가고 싶습니다.
하다 아트컴퍼니의 목표 가운데 ‘새로운 공연 언어를 만들어 내는 것’이란 무엇인가요?
아마도 새로운 공연 언어를 만들어 내는 건 모든 극단의 과제일 듯합니다. 1,000가지 작품이 있다면 1,000가지 연기술도 존재하겠죠. 저희는 보디 싱크(body sync)라는 고유한 공연 언어를 가지고 사운드와 움직임을 동시에 구축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립싱크의 몸 버전인데, 일상의 소음을 음악으로 재구성하고 그 음악 위에 신체의 움직임을 겹쳐 서사를 완성하는 방식이에요. 물체부터 비물체까지 온갖 소리를 배경에 깔아 보고 서민준 배우의 몸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어요. 아주 놀라운 테크닉은 감탄을 자아낼 수는 있지만 관객의 마음 깊숙이 가닿기는 힘든 것 같아요. 그래서 평소에 하는 제스처나 보디랭귀지를 기호화해서 반복하거나 변주시켜 보곤 합니다.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합니다.
<홈>이라는 새로운 피지컬 시어터의 프리 프로덕션이 진행 중입니다. 폴크방 예술대학교의 엘리샤 호프만 교수님과 매달 줌으로 미팅을 하고 있어요. 향후 우리 팀이 독일에서 공연을 하고, 독일 팀도 한국에서 공연을 하고, 나아가 함께 공연을 제작하는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홈>은 기후 문제, 전쟁, 빈부 격차 등의 등 전 세계적인 이슈를 집안에서 펼쳐지는 여러 사건을 통해 은유적으로 암시할 예정이에요.
<학교>를 잘 마친 다음에는 공원을 무대로 삼아 보고 싶어요. 분명 쉼의 의미를 가진 곳인데 한국에서는 자기계발 장소로 쓰이잖아요. 열심히 운동하거나 친목을 도모하거나 장사하는 분들이 대다수예요. 영국의 작은 공원에만 가도 잔디에 드러누워 잠을 자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 모순적인 장면을 가지고 <파크>를 만들어 봐도 좋겠다 싶네요. 무대를 온통 녹색으로 물들이고 관객들과 같이 쉬어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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