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던 소년이 그 근원을 찾아 헤매며 축적해 온 시간. 열병을 앓듯 투신했던 길이 수월했을 리는 없다. 다만 작가는 한국회화를 규정하는 관념, 미술의 규범에 얽매이지 않았고 손쉬운 타협 없이 여기까지 왔다. 2026 성남큐브미술관 동시대미감전 <김덕용: 빛과 결, 自生之美>는 그 여정을 대대적으로 정리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글 김문영 객원기자 | 사진 최재우
그리움과 희망을 따라 펼쳐 온 작업들
반갑습니다. 작업실에 와 보니 그리시는 작품들이 얼마나 대작인지 실감하게 됩니다. 전시 준비는 잘 되어 가시나요?
이번 전시에서는 아주 초기작은 아니지만 대략 15년쯤 된 작업부터 신작까지 함께 선보일 예정입니다. 쉬운 작업이 있겠습니까마는 작품의 크기와 재료, 작업 방식 때문에 힘이 많이 들어가기는 해요. 체력이 허락할 때까지 힘껏 그리려고 합니다. 성남에서 본격적으로 작가 생활을 시작했고, 제 두 아이를 길렀습니다. 이곳에서 오랜만에 여는 전시라 더 뜻깊은 자리로 만들고 싶습니다.
40년 가까이 한국미의 세계를 탐구해 오셨는데요, 그 시작점이 궁금합니다.
출발은 평범했어요. 미술대회에서 상을 자주 받았고 자연스럽게 화가를 꿈꾸었습니다. 중학 시절에 상을 받고선 가장 한국적인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되겠다고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적 미감에 일찍부터 눈을 뜨고 몰두했어요. 대학에 진학해 동양화를 선택한 이유도 한국적인 것을 그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한국화란 무엇인가를 한창 이야기하던 때였고, 내가 그 답을 찾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적인 것에 대한 탐구를 어떤 방식으로 이어 가셨나요?
동양화를 배울수록 답답한 지점이 있었어요. 동양화의 전통 기법이나 재료 같은 것을 마치 수능 준비하듯 배우는데, 이게 내가 찾는 한국미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기존의 접근법이 나와 맞지 않다면 내가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보자고 생각했어요. 우리의 미의식은 선사시대의 암각화에도, 석굴암 본존불에도, 목조 건물의 단청에도 있어요. 그것들을 어떤 기법이다, 장르다, 딱딱 분리해서 설명하려고 하는 관행이 어쩌면 한국미를 납작하게 설명하고 가능성을 제한하는 태도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었습니다. 한지에 먹 대신 목재를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려도 한국회화일 수 있다고 믿었지요.
형식보다 본질에 주목하셨군요.
최근 몇 년 새 전통 장르가 주목받고 민화에도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민화를 형태로만 이해하고 재현하려는 시도도 많아 보여요. 까치와 호랑이가 등장하고, 책가冊架가 놓여 있으면 민화라고 주장하는 듯합니다. 한국미가 무엇이냐고 할 때 그 본질은 정신성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미술에 은은하게 묻어 있는 자연스러움 같은 것들이지요. 그래서 제 관심은 어떤 재료를 사용하든 그 정신성을 제대로 담아내는가에 있어요. 자연스럽고 조화롭고 은근하고 소박한 것들을 중시합니다. 작업을 끝내는 기준도 그거예요.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러운가.
김덕용, <화양연화>, 2025, Mother of pearl and mixed media on wood, 90×100cm
나무, 자개, 숯 같은 재료를 고른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각각의 재료를 사용한 계기는 있었어요. 예를 들어 자개는 어릴 적 어머니가 입으셨던 반짝이는 한복 치마에서 영감을 얻었지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어떤 재료를 선택했다기보다는 그것들이 절대적으로 나에게 다가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재료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리움’이라고 할까요
나무 위에 자개로 여인을 그린 <자운영>2020을 보면 자개의 그리움이 직관적으로 와 닿습니다. 주로 사용하시는 재료들이 ‘그리움’의 정서를 품고 있는 것은 왜 그럴까요?
제가 사용하는 재료의 물성은 저를 닮았어요. 재료의 의인화라고 할까요? 저는 자신과 재료를 일치시켜요. 제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유목민 같다고 생각해요. 전라남도 순천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공부하고 서울로 올라와 대학을 다녔어요. 봉천동, 신림동을 떠돌다가 정착한 곳이 성남이었지요. 제가 서울에서 대학 다니던 시기는 격동의 시대였고 고생과 혼란스러움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어요. 남들처럼 고향에서 대학을 다녀도 될 걸 왜 굳이 서울까지 갔냐는 말을 들으면서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견뎠던 시절이에요. 제가 그리는 인물이나 풍경, 모든 소재에 그리움이 짙게 묻어 있어요. 그 감각이 재료의 물성을 만나서 생생하게 살아나요. 나무는 숲을 떠나 가공되고 쓰임을 다해 저에게 왔고, 전복이나 소라 껍데기도 마치 모성 같은 바다를 떠나 인간에게 와서 자개로 다시 태어났어요. 저와 나무, 자개, 모두가 떠나온 곳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어요.
그 그리움이 빛과 결이라는 주제 의식으로 승화된 건가요?
나무의 결과 자개의 빛은 시간의 축적이고 흔적이에요. 물질의 시간성은 제 작업의 핵심 테마입니다. 저는 나무의 결을 지나온 시간, 역사일 수도 있는 과거라고 해석해요. 자개의 빛은 우리가 늘 바라보고 살아가는 희망이고요. 삶은 과거를 품고 미래를 향하며 그 둘이 교차하는 지점, 오늘에서 의미를 찾아요. 과거, 현재, 미래가 얽히는 감각이 빛과 결을 품은 재료로 표현되고 바다, 우주 같은 공간으로 그려집니다.
인물이나 달항아리 같은 사물에서 바다와 산수, 우주로 표현 대상이 확장된 것도 필연인가요?
예전에는 제 안의 아픈 기억, 과거의 어떤 장면들, 구체적으로 그리워하는 대상을 주로 그리기도 했어요. 혼란했던 시대의 상처가 작업의 주요 동기가 되었을 수도 있어요. 그러다 점차 더 자유로운 표현을 갈망하고 삶의 본질에 다가서고자 하는 욕망이 커졌어요. 저에게 삶은 생명의 순환이에요. 무에서 태어나 관계를 맺고 살아가다 무로 돌아가지만, 보이는 모습은 사라져도 본령은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에 존재하는 생명의 영속성을 그려 왔어요. 자개는 원래 있었던 바다를 향해 귀소하거나 우주의 별이라는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김덕용, <차경-블라인드>, 2026, Mother of pearl and mixed media on wood, 140×150cm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미감의 근원
전시의 제목 ‘빛과 결’에 덧붙인 ‘자생지미(自生之美)’가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제가 만들어 낸 혹은 발견한 아름다움이에요. 고향을 떠나온 저와 나무, 자개, 이런 요소들은 그동안 서로 분리되어 있었지만 제 작업을 거쳐 혼합되고 새로운 존재로 태어났어요. 앞에서 물질의 시간성이 제 작업의 핵심이라고 말씀드렸는데, 나무나 자개 같은 재료를 고르고 다듬고 색을 입히고 형태를 만드는 모든 과정이 시간의 축적이에요. 이 점을 포착해서 느린 속도로, 숨을 불어넣으며, 삭힘의 과정을 거쳐 탄생하는 아름다움이라고 평론해 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외부에서 빌려오거나 주입된 감각이 아니라는 점을 더 주목하고 사랑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독자적인 한국회화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나요?
제 작업을 시작한 시기를 떠올려 보면 나무에 그림을 그리는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회화와 자개의 접목이라는 것도 없었습니다. 재료를 찾아 헤매고 공장마다 다니며 필요한 작업을 부탁했던 모든 과정이 처음 시도하는 일이니 힘들 수밖에 없었어요. 또, 재료에 원하는 색을 입히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겠습니까. 그래도 제가 한국의 미를 찾는 데는 이 방법뿐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힘들고 오랜 시간이 걸려도 포기할 수 없었어요. 한국미술은 오직 수묵화, 문인화고 사대부의 그림이라는 관념이 굳은 상황에서 우리 미술을 좀 더 심화, 확장하는 것이 저의 사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의 미를 현대적이면서 글로벌한 감각으로 해석하고 확장해 오셨어요. 선생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내 것만 고집하면서 누가 알아주기를 기다려서는 미술 작업에 한계가 있으니까요. 제가 한국의 미를 밝히고자 애쓴 것은 우리 것을 있는 그대로 지키자는 국수적 의미가 아니에요. 저는 늘 국제성을 강조해 왔어요. 한국적인 것과 서구적인 것을 구분해서 우리 회화에 서구적 요소를 이식해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국제성을 찾는 작업이에요. 물, 바다를 생명의 본질로 바라보는 것은 동서양을 넘어 통용되는 사상이고 감각이에요. 우주를 과학의 세계로 이해하는 것은 서구 교육의 영향이겠지만,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집 우(宇)와 집 주(宙)를 사용하면서 ‘큰 집’이라는 감각으로 우주를 받아들였어요. 저는 우리의 정서를 기반으로 전통과 현대를 초월하는 미감을 만들어 내고 공유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회화의 자생성이 제 작업을 설명하는 주요 키워드가 되었다고 할 수 있고요.
그간의 도전과 성취를 이번 전시에서 어떤 구성으로 펼쳐 보이실지도 궁금합니다.
우선 성남아트센터라는 공간이 저에게 전해 주는 특별한 감상이 있어요. 제가 뜨내기처럼 살다 정착한 곳이 성남이라고도 말씀드렸지만, 성남아트센터는 첫 삽을 뜰 때부터 지켜본 곳이어서 남다른 애정이 있습니다. 작가는 전시를 앞두고 늘 전시장 공간을 해석해요. 큐브미술관의 형태를 볼 때, 한국미의 근원을 밝히고 확장을 모색했던 그간의 작업을 가장 유기적으로 구성해 선보일 수 있는 공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영롱한 구슬에서 저의 유년 시절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그 시절 저에게 구슬은 땅의 별이자 미래의 꿈이었거든요. 이 작품이 <화양연화>입니다. 거기에서 우리의 삶과 사유가 담긴 책 그림이 이어져요. 고정된 벽을 따라 나무와 자개, 각각의 변화를 펼쳐 보이고 마지막에는 바다와 우주가 관람객을 기다릴 거예요.
관람객을 위한 감상법을 추천하신다면요?
작가로서 작품을 보시는 분이 어떻게 감상하기를 바란 적은 없었어요. 제가 그림에 담은 물성과 정신성은 제 의도일 뿐이고 관람객은 다르게 해석할 수 있지요. 해석의 여지가 많을수록 좋은 전시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 작업 여정을 전반적으로 정리하는 전시이다 보니 더 기대되는 점도 있습니다. 이후에 국내외의 여러 전시 일정이 계획돼 있는데 그 성격은 좀 다를 것 같아요. 이번 전시는 그간의 변화와 앞으로의 지향까지 주요 흐름을 한 공간에서 살펴볼 수 있는 자리인 만큼 관람객들께서 작품을 통해 작가의 삶을 함께 느끼시는 전시가 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