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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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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기 4] 이자람 판소리 <눈, 눈, 눈> | 톨스토이 너도, 얼씨구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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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흥에 한껏 취해 있을 5월, 이자람 판소리 <눈, 눈, 눈>은 별안간 러시아의 눈보라로 무대를 채운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시라. 이 재주 많은 소리꾼의 능청은 자연스럽게 관객을 이끌어 갈 것은 물론이고, 유쾌한 탄복까지 자아낼 테니! 

 

허서현 월간 <객석> 기자 | 사진 제공 LG아트센터, Studio AL

 

 

이자람이 전통 판소리 형식의 한복판으로 낯선 이야기를 끌어들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독일 극작가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작품을 바탕으로 <사천가>(2007)와 <억척가>(2011)를 만들었고, 남미 문학의 거장 마르케스(Gabriel García Márquez)의 소설로는 <이방인의 노래>(2016)를 선보였다. 2019년에는 헤밍웨이(Ernest Hemingway)에게 노벨 문학상을 안겨 준 『노인과 바다』」로도 동명의 창작 판소리를 선보인 데 이어, 지난해에는 대문호 톨스토이(Leo Tolstoy)의 단편 소설 「주인과 하인」의 서사에서 <눈, 눈, 눈>이라는 새로운 소리판을 풀어냈다. 세계 문학의 서사를 판소리의 소리판으로 풀어내는 작업은 이미 이자람 창작 세계의 중요한 축이 되어 왔다.

공연은 소설의 서사를 따른다. 탐욕스러운 상인 바실리는 눈보라 치는 날씨에 여정을 시작한다. 이익을 위해 하인 니키타도, 말 제티도 돌보지 않고 재촉하지만, 결국 길을 잃고 눈밭을 헤맨다. 그러나 얼핏 악독한 인물처럼 보이던 바실리가 생사의 갈림길에서 뜻밖의 선택을 하게 되면서 그 선택은 결국 누군가의 목숨을 살린다. 이에 대해 이자람은 "고백하자면, 바실리가 나와 닮은 사람임을 인정하는 데에 정말 오래 걸렸다"라면서도, "결국 나와 참으로 닮은 바실리가 수많은 삶의 신호들 사이에서 막다른 곳에 도착하여 자기다운 방식으로 생애 처음 느끼는 기쁨을 얻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덕분에, 내가 아직 글러 먹은 인간은 아닐 수도 있겠구나 하는 위로를 받았다"라고 전한다. 고전 소설이 주는 입체적 교훈이 이자람의 깨달음을 거쳐 구수한 판소리의 맛을 입은 순간이다.

 

 

판소리 <눈, 눈, 눈>의 무대는 최근 그의 작품이 그렇듯 광활한 설원처럼 비어 있다. 펼치고 접으며 세상 모든 사물을 표현할 수 있는 부채 한 자루 쥔 한복 차림의 소리꾼, 그리고 소리북을 치는 고수가 전부다. 전통적인 '빈 무대'를 채우는 이자람의 에너지와 무대 장악력, 그리고 빛과 색을 이용한 미장센이 극의 서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전통 판소리 원형 그대로에 가까운 2시간여의 긴 공연이지만, 스무 살에 동초제 춘향가를 8시간 완창으로 풀어내 기네스북에 등재됐던 이자람은 능숙하게 관객을 이끌 예정이다. 바실리의 부인, 논밭에서 만난 농부들로 분하는 것은 물론, 개 짖는 소리, 말이 당근을 '아드득' 먹는 소리까지 실감 나는 의성어에 키득거리다 보면 톨스토이도, 판소리도 쉽고 가깝다. 이자람이 부채를 흔들면 관객은 '쉬이' 하는 소리를 내뱉어 러시아에 부는 서늘한 바람 속 이야기를 함께 만들기도 할 테다.

19세기 러시아 소설과 300년 전통의 조선 판소리, 그리고 21세기 서울의 소리꾼과 관객까지, 서로 다른 시공간 속 존재들이 '얼씨구!' 하는 흥에 엮여 넘실넘실 공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 이자람 <눈, 눈, 눈> 소리판이다.

 

이자람 판소리 <눈, 눈, 눈>
일시 | 5월 23일(토) 오후 5시
장소 |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문의 | 031-783-8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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