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반주 바이올린 연주를 들을 때면 떨리는 현의 독백에 오롯이 온몸을 내맡기곤 한다. 피아노 독주회에서는 피아니스트가 펼치는 그만의 세계를 구석구석 느낀다. 듀오 리사이틀에서는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대화하고 부딪치는 가운데 지금 이 순간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무언가가 번뜩인다. 다양한 실내악 무대 중에서도 바이올린과 피아노는 가장 명료하게 다가오는 빛의 조합이다.
글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음악 칼럼니스트
ⓒMarco Borggreve
부부였던 바이올리니스트 안네-조피 무터와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 앙드레 프레빈은 함께 연주하며 깊은 교감을 음악으로 나누어 우리에게 전했다. 바이올리니스트 길 샤함과 아내 아델 앤서니, 누이인 피아니스트 오를리 샤함의 협업도 패밀리 어페어family affair다운 다정함이 넘친다. 바이올리니스트 스베틀린 루세브와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이란 앨범을 내고 함께 공연했다. 같은 길을 걸으면서도 도전 정신으로 충만한 두 사람의 연주를 들으면 서로의 음악을 진심으로 아끼고 있음이 느껴진다.
이렇게 특별한 듀오 앙상블이 가정의 달 5월에 우리 곁을 찾는다.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과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듀오 리사이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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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음악성과 섬세한 표현력, 클라라 주미 강
클라라 주미 강은 독일에서 태어나 두 살 때 피아노로 음악을 시작했다. 성악가였던 부모님은 딸에게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 슈만의 이름을 지어 줬다. 세 살 때 산타클로스로 분장한 아버지로부터 바이올린을 선물받았다. 다섯 살 때 함부르크에서 오케스트라와 협연했고 여섯 살 때 독일 디 차이트Die Zeit지에 신동으로 소개됐다. 아홉 살 때 텔덱 레이블과 첫 녹음을 했다.
2009년 4월, 필자는 클라라 주미 강의 연주를 처음 접했다.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서울국제음악 콩쿠르 준결선에서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2번을, 결선에서 베토벤 협주곡을 연주한 그녀는 시원시원한 연주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2010년 센다이 콩쿠르와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바이올린 퀸’의 이름을 알렸다.
2015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4위에 오르며 20대를 마무리했다. 이후에도 그녀는 잊을 수 없는 연주들을 선보였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의 비발디 <사계> 협연은 강렬하고 우아했다. 2016년 베를린 바로크 졸리스텐과의 협연에서는 바로크 앙상블과 잘 어우러지는 음악적 성향을 보여 주었다. 2018년 서울시향과 협연한 브루흐 ‘스코틀랜드 환상곡’에서는 적극적으로 음을 만드는 클라라의 민첩한 비브라토가 청중의 이목을 바이올린으로 집중시켰다. 팬데믹의 긴 터널 끝이던 2021년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을 김선욱과 녹음하고 기념 리사이틀을 가졌다. 2019년 세종 솔로이스츠와의 공연에서 연주한 마스네 ‘타이스 명상곡’도 빛이 났고, 2024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데뷔 이후 이어진 내한 리사이틀에서는 타르티니 ‘악마의 트릴’, 쇼송 ‘시곡’, 프랑크 소나타 등에서 웅숭깊은 연주를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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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욱, 독일 낭만주의의 깊이를 그리는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한국 클래식의 약점으로 지적되곤 했던 베토벤, 브람스 등 독일-오스트리아 고전 낭만주의 음악에 탁월한 해석가로 이름이 높다. 리즈 콩쿠르 우승 이후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영국 왕립음악원에서 지휘 석사 학위를 받고 경기필 음악감독을 역임하는 등 지휘자로서도 정력적이다. 악첸투스 레이블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발트슈타인’과 ‘함머클라비어’를 담은 앨범 이후 프랑크 ‘전주곡, 코랄과 푸가’, 브람스 피아노 소나타 3번을 수록한 음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비창, 월광, 열정, 30~32번)를 발표했다. 앞서 언급한 클라라 주미 강과의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음반이 최근 녹음이다.
협주곡으로는 정명훈 지휘의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 함께 연주한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의 실황2019과 6개의 소품2020이 담긴 음반이 있다. DG에서 정명훈 지휘 서울시향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및 진은숙 피아노 협주곡 음반을 발매했다. 이 가운데 진은숙 피아노 협주곡 음반은 BBC 뮤직 매거진상과 국제 클래식 음반상을 수상했다. 2023년 베를린 필하모닉이 발매한 진은숙 에디션 음반 세트에는 사카리 오라모 지휘로 김선욱이 연주한 피아노 협주곡이 수록됐다.
2025년 김선욱은 롯데콘서트홀 등에서 유럽 챔버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지휘까지 겸해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곡을 선보였다. 독일-오스트리아 피아노 연주의 강점과 새롭게 진입해 안정권에 접어든 지휘 예술을 모두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 뒤 12월 김선욱은 조성진이 협연한 파가니니 광시곡과 차이콥스키 ‘비창’을 지휘하며 경기필과의 2년 임기를 마무리했다.
클라라 주미 강과 김선욱이 2021년 이후 5년 만에 듀오 무대로 성남아트센터를 찾는다. 프로그램은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1번, 레스피기 바이올린 소나타, 미에치스와프 바인베르크 바이올린 소나타 4번, 슈트라우스 바이올린 소나타다.
공연의 문을 여는 베토벤 소나타 1번에서는 음반과 공연으로 여러 차례 맞춰 본 두 연주자의 능숙한 앙상블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레스피기 소나타와 슈트라우스 소나타는 그 화려한 기교와 낭만성으로 인해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최고급 요리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들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크리스티안 치메르만의 명반DG이 생각난다. 바인베르크 소나타는 차이콥스키 콩쿠르 입상 이후 클라라를 초청해 온 멘토 기돈 크레머가 즐겨 연주하는 작품이다. 쇼스타코비치의 영향과 유대 전통이 빚어내는 음울하고 명상적인 분위기는 최근 전쟁으로 인해 불안한 시대 분위기와도 묘하게 맞닿아 있다.
바늘 가는 데 실 간다는 말이 있다. 건반과 현이 꼭 바늘과 실처럼 느껴진다. 가장 믿음직한 두 연주자가 펼치는 현과 건반의 마법이 음악 애호가들에게 5월의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할 것이다.
클라라 주미 강 & 김선욱 듀오 리사이틀
일시 | 5월 27일(수) 오후 7시 30분
장소 |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
문의 | 031-783-8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