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오페라는 ‘종합예술의 꽃’으로 불린다. 줄거리가 있는 문학과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이 어우러지고, 그 위에 무대미술, 의상, 조명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들이 조화를 이뤄야 비로소 완성도 높은 공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페라 예술의 꽃’은 누가 뭐래도 음악, 그중에서도 성악가들이 부르는 아름다운 아리아Aria라 할 것이다. 두 시간 넘게 진행되는 강렬한 드라마 속에서도 아름답고 감미롭게 피어나는 우아한 선율의 아리아는 관객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영혼의 깊은 곳까지 정화해 주는 특별한 힘이 있다. 여기 지역과 시대를 뛰어넘어 온 인류를 감동시켜 온 불멸의 명곡 아리아 세 곡을 소개해 본다.
글 황지원 오페라 평론가
도니제티 <연대의 딸>. 소프라노 에린 몰리(마리)와 테너 로렌스 브라운리(토니오)가 함께한 2025/26시즌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연대의 딸>의 한 장면 ⓒKaren Almond/Metropolitan Opera
찬란한 ‘아홉 High C’의 기적
도니제티 <연대의 딸> 중
‘친구들이여, 오늘은 축제의 날 Ah! mes amis, quel jour de fête!’
가에타노 도니제티(Gaetano Donizetti, 1797~1848)는 로시니, 벨리니와 함께 벨칸토 오페라의 3대 작곡가로 불리는 거장이었다. 그는 특히 비극과 희극 모두를 잘 썼던 다재다능한 예술가로 유명했는데, <연대의 딸(La fille du régiment)>은 유쾌한 분위기의 희극 오페라로 분류된다.
작품은 평화로운 티롤 지방에서 시작된다. 한때 전설적인 위용을 떨쳤던 프랑스의 산악 부대가 스위스에 진을 치고 오스트리아 등과 싸우고 있었다. 참혹한 전쟁이 계속되니 전쟁고아도 생겨났다. 어느 날 올망졸망한 눈동자에 통통하고 귀여운 아이가 부대 앞에서 발견되는데, 부모가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결국 프랑스 척탄병 연대의 군인 아저씨들이 이 꼬마 숙녀를 거둬 키운다. 졸지에 수십 명의 아버지와 삼촌들 품 안에서 자라게 된 꼬마에게 아저씨들은 마리(Marie)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마리는 무럭무럭 자라 어느덧 숙녀가 되었고, 주둔지 마을의 청년 토니오(Tonio)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상견례(?)를 하러 나타난 토니오에게 군인 아저씨들은 발끈한다. “아니, 우리가 그간 마리를 어떻게 키워 왔는데, 너 같은 산골 촌놈이 우리 딸을 넘본단 말이냐?!”
결국 토니오는 비장의 한 수를 던진다. 아예 척탄병 연대에 자원입대하기로 한 것이다. 연대의 일원이 되면 설마 그때에도 자기를 내치진 않을 거란 계산이었다. 군복을 입고 나타난 토니오를 보고는 군인 아빠들의 표정과 태도가 확 달라진다. 신이 난 토니오가 테너 최고음인 ‘하이 C’를 무려 아홉 개나 쏟아 내며 아리아를 부르기 시작하니, 저 유명한 ‘친구들이여, 오늘은 즐거운 축제의 날 Ah! mes amis, quel jour de fête!’이다.
이 아리아를 노래하기 위해서는 고도로 세련된 미성과 초인적인 고음 기교가 동시에 필요하다. 과거에는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완벽한 고음 구사로 전설적인 명성을 얻었고, 21세기 우리 시대에는 페루 태생의 테너 후안 디에고 플로레스가 최고의 토니오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그의 날렵한 미성과 찬란한 고음으로 이 아름답고 유쾌한 사랑의 찬가가 주는 황홀한 매력을 만끽해 보자.
추천 레코딩
테너 후안 디에고 플로레스(Juan Diego Flórez) (Decca,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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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디 <라 트라비아타>. 2026 시즌 더 로열 오페라단 <라 트라비아타>의 한 장면 ⓒPamela Raith/The Royal Opera
어느 비극적 여인의 초상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 중
‘지난날이여 안녕 Addio del passato’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왕’이라 불렸던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가 남긴 최고의 걸작이다.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작품인데, 예전에는 <춘희(春姬)>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길을 벗어난 여인’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원어 제목이 보다 널리 쓰이고 있다.
<라 트라비아타>의 주인공 비올레타 발레리는 프랑스 사교계의 여왕이었던 실존 인물 마리 뒤플레시스를 모델로 삼았다. 소설 <삼총사>로 유명한 알렉상드르 뒤마의 아들 뒤마 피스는 작가로 명성을 떨치기 전에 마리 뒤플레시스의 살롱을 몇 번 드나들었는데, 그만 그녀의 우아한 자태에 반해 남몰래 연정을 불태우게 되었다. 뒤마는 이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동백꽃 여인(La Dame aux Camelias)>이라는 소설을 발표했고, 후일 베르디의 손에 의해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오페라로 재탄생했다.
오페라는 프랑스 파리의 최고급 살롱에서 귀족이나 대부호를 상대하는 ‘밤의 여인’ 비올레타 발레리의 일생을 노래한다. 그녀 앞에는 몇 달 전부터 집요하게 구애를 보내는 순박한 청년 한 명이 나타나는데, 알프레도라는 이름의 남자였다. 세련되지도, 돈이 많지도, 지위가 높지도 않았지만 알프레도의 열정적인 고백과 한결같은 태도는 결국은 비올레타의 마음을 움직이게 된다. 비올레타는 밤의 여인 생활을 청산하고 파리 교외에 작은 집을 마련해 알프레도와 동거 생활에 들어간다.
그러나 두 사람의 애틋한 사랑도 곧 위기를 맞이한다.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이 나타난 것이다. 비올레타를 만난 제르몽은 부드럽고 신사적이지만 동시에 지극히 단호한 어조로 아들과의 즉각적인 이별을 종용한다. 비올레타는 서러움에 북받쳐 눈물을 흘리지만 결국은 제르몽의 집요한 요구에 굴복하고 만다. 이 와중에 알프레도는 그녀의 진심을 오해한다. 비올레타가 그저 돈과 화려함을 다시 좇아 자신을 매몰차게 버렸다는 것이다. 알프레도의 힐난에 그녀는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입게 되고, 건강을 잃은 채 홀로 쓸쓸히 죽어 가는 처지가 된다.
이때 비올레타가 부르는 아리아가 ‘지난날이여 안녕 Addio del passato’이다. 베르디가 남긴 최고의 소프라노 아리아로 손꼽히는 이 노래에는 비올레타의 모든 비극이 담겨 있다. 죽음과도 같은 고독, 쓸쓸한 회한, 삶에 대한 처절한 자조와 지나간 사랑에 대한 비통의 심정 등이다.
“안녕, 지난날의 아름답고도 즐거웠던 꿈이여,
장밋빛 얼굴도 아주 창백해지고,
알프레도의 사랑조차 지금 내게는 없다.
지쳐 빠진 영혼을 뒷받침하고 격려해 줄 터인데.
이 타락한 여자의 소원에 미소를 보여 주세요.
이 여자를 용서하고, 받아 주십시오, 하느님!
이제 모든 것은 끝입니다.”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는 역사상 최고의 비올레타로 손꼽힌다. 그녀의 깊고도 뜨거운 목소리와 위대한 인간적 울림은 지금도 듣는 이의 가슴을 뒤흔들어 놓는다. 칼라스가 남긴 수많은 실황 레코딩과 스튜디오 녹음 등을 통해 그녀의 전설적인 명연을 접할 수 있다.
추천 레코딩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 (Warner Classics,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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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치니 <투란도트>. 2025/26 시즌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투란도트>에서 테너 마이클 파비아노가 칼라프를, 소프라노 안젤라 미드가 투란도트를 연기했다 ⓒKen Howard/Metropolitan Opera
사랑의 승리를 노래한 온 인류의 아리아
푸치니 <투란도트> 중
‘공주는 잠 못 이루고 Nessun dorma’
자코모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1924)가 남긴 최후의 오페라 <투란도트(Turandot)> 제3막에는 테너 아리아 한 곡이 등장한다. ‘공주는 잠 못 이루고‘라는 번역투 제목으로도, 혹은 원어 발음 그대로 ‘네순 도르마’로도 널리 알려진 이 곡은 영화 <킬링필드>나 <미션 임파서블 5> 등에도 삽입되어 대중에게도 매우 친숙한 아리아이기도 하다.
오페라는 전설 시대 중국이 배경이다. 남성혐오증을 갖고 있는 투란도트 공주는 각국에서 몰려오는 왕자들의 구혼 세례를 모두 물리치고 있는데, 그 방법이 독특하다. 세 가지 수수께끼를 낸 후 모두 맞히면 공주와 결혼할 수 있지만 하나라도 틀리면 곧바로 참수형이라는 것. 이때 타타르의 왕자 칼라프가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그녀에게 구혼장을 내민다. 왕자는 우여곡절 끝에 수수께끼를 모두 풀어내지만 그래도 공주는 계속해서 왕자의 사랑을 거부한다. 급기야 왕자는 역으로 공주에게 수수께끼를 내게 되니 “내일 아침까지 왕자인 내 이름을 알아내면 투란도트 당신의 승리, 그렇지 않으면 내가 사랑으로 당신을 차지하리라”라는 것이다.
왕자의 선언에 공주는 크게 당황하고, 모든 북경 시민을 동원해 밤샘까지 하며 왕자의 이름을 알아내려 필사의 노력을 펼친다. ‘공주는 잠 못 이루고’는 동이 틀 즈음 왕자가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며 부르는 노래다. 특히 곡의 마지막 부분에서 테너의 고음과 함께 터져 나오는 찬란한 승리 선언 “빈체로 Vincero”(나는 승리할 것이다)는 듣는 이의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밤이여 물러가라! 별들이여 사라져라!
새벽이 오면 나는 승리할 것이다! 나는 승리할 것이다!"
이 노래가 처음 대중의 주목을 받은 것은 캄보디아 크메르루주군의 대학살을 고발한 영화 <킬링필드(The Killing Fields)>에서였다. 영화 속에서 거대한 용이 꿈틀거리듯 격정적인 노래를 부른 가수는 왕년의 명테너 프랑코 코렐리였다. 마치 고독한 들짐승이 서글픈 울음을 토해 내듯 절규하며 노래하는 그의 아리아는 관객들의 가슴을 깊이 울렸다.
곧이어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이 노래를 세계 최고의 히트 넘버로 변신시켰다. 1990년 로마 월드컵 즈음에 그가 부른 ‘네순 도르마’는 영국 팝 차트 2위까지 오를 정도로 빅 히트를 기록했다.
지금도 이 곡은 테너 파바로티의 예술 세계를 상징하는 곡으로 기억된다. 그는 수많은 콘서트와 오페라 무대에서 이 아리아를 노래했고, 그 덕에 대중들은 오페라를 좀 더 친숙하게 여기게 되었다. 파바로티가 우리 곁을 떠난 지도 20여 년이 흘렀지만, 이 아리아와 함께 그는 영원히 우리 마음속에 살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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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 <투란도트>(Decca,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