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 메뉴 바로가기

2026년 6+7월호

CULTURE
[BOOK] 이 한 권의 책 | '인간-기계' 혹은 '기계-인간'에 맞서서
조회수 69

인간 문명의 거대한 변곡점, 인공지능(AI)이 몰고 오는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할까. 근거 없는 낙관이나 공포는 필요하지 않다. 저 인간의 모습을 한 기계 - 혹은 기계의 모습을 한 인간 - 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최대한 ‘공부’하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인간은 ‘인간만의’ 무기를 갖출 수 있다. 저 ‘인간-기계’가 도저히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능력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오경진 문학 평론가, 서울신문 기자

 

어쩌면 문학이 아닐지도 몰라
“다르게 읽는다는 것은 다르게 본다는 것입니다. 다르게 읽음으로써 다르게 썼다면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AI는 새로운 생각이 가능한 문학 기계입니다. AI의 힘을 빌려, 인간이 자기 언어의 오랜 관습을 벗어날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지게 되었다고 상상해 봅시다. 그것이야말로 인간 언어가 꽉 닫아 놓은 세계에서 인간이 해방을 경험하는 사건이 아닐까요.”

저자 중 한 사람인 사이버텍스트 디자이너 권보연이 책에 실린 좌담에서 한 말이다. 오늘날 인간이 AI에 느끼는 공포의 핵심은 ‘대체가능성’이다. 언젠가 저 기계가 나를 대신할 거라는 막연한 불안감. 문학도 마찬가지다. 아니, AI는 언어를 ‘생성’한다는 점에서 우리 세계 안에서 작가와 거의 똑같은 위상을 지니고 있을지 모른다. 실제 AI의 시·소설 창작 실력은 이미 수준급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문학의 종언’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거라는 게 권보연을 비롯한 저자들의 진단이다. 오히려 그동안 한계에 갇혀 돌파구를 찾지 못했던 인간 언어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주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권보연·김언·허희 | 리메로북스 | 300쪽 | 26,000원

 

축음기, 영화, 타자기
“레밍턴 타자기에서 튜링 기계를 거쳐 초소형 전자공학에 이르기까지, 기계화로부터 자동화를 거쳐 의미가 아니고 부호일 뿐인 문자의 실행에 이르기까지, 문자의 매우 오래된 저장 독점이 접속 회로의 전능함으로 넘어가는 데는 1세기로 충분했던 것이다.”

매체의 변천 속에서 인류사를 통찰한 20세기의 지성 프리드리히 키틀러의 명저로, 상당히 두툼하고 어려운 ‘벽돌책’이지만 AI 시대에 꼭 한번은 들춰 봐야 할 필독서다. 1986년 독일에서 초판을 발행한 이 책으로 키틀러는 독일의 독문학자 중 한 사람에서 세계적인 매체철학자로 발돋움한다. 지식을 저장하는 유일한 체계였던 문자의 독점은 영화, 축음기, 타자기가 속속 발명되면서 그 위상을 조금씩 상실하게 된다. AI는 문자뿐만 아니라 영화, 축음기, 타자기까지 모두 포괄해 버리는 ‘궁극의 매체’인 것 같다. AI 이후 인간의 ‘지식’은 어떤 형태를 띠게 될까.

프리드리히 키틀러 | 문학과지성사 | 564쪽 | 35,000원

 

키오스크 학교
“진실은 매 순간 변한다. 태동하는 하나의 생물이라도 되는 듯이. 혹은 수천 개의 갈래로 나뉠 수 있는 물결의 구성 성분이라도 되는 듯이.”

학생들을 관공서나 식당에 서 있는 기계로 길러 내는 교육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장편 소설이다. 소설은 존재하는 것의 ‘목적’을 생각하게 만든다. 인간이 만들어 내는 모든 도구는 어떤 목적을 지니고 있다. AI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 나아가 생명은 그렇지 않다. 생명은 ‘먼저’ 존재한다. 존재한 다음에 목적을 찾기 시작한다. 어쩌면 이것이 인간과 AI의 결정적인 차이 아닐까. 분명한 목적이 있는 AI는 절대로 방황하지 않는다. 인간은 다르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파우스트』 속 명문장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처럼, 존재 그 자체가 방황의 역사다. 목적 없이 흔들리고 죽을 때까지 삶의 이유를 찾는 것. 그것이야말로 AI가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함이다.

이서아 | 민음사 | 388쪽 | 16,000원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해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