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사의 혼란스러웠던 시기를 관통하며 작곡가 겸 지휘자, 교육자로 평생 음악의 길을 걸어온 박태현. 음악을 ‘인생의 전부이자 숙명’으로 여기며 살았던 그의 삶을 기억하는 가족과 작고 후 업적을 정리하고 뜻을 기려 온 지역 문화예술계 인사들, 그리고 창작오페라 <바람의 노래> 제작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공연 전문가들에게서 작곡가 박태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본다.
글 손세은 성남문화재단 홍보기획부
성남시 율동공원에 자리한 작곡가 박태현 노래비 Ⓒ 최재우
인터뷰(가나다순)
김성태 박태현기념사업회 회장
김정진 성남문화원 사무국장
민경찬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명예교수
박용준 성남청소년오케스트라 단장
박정아 박태현의 첫째 손녀
장경환 성남예총 음악협회 지부장
Q. 내가 기억하는 작곡가 박태현
김성태 1980년대 초 성남예총의 창립을 준비하던 무렵, 마침 성남에 정착한 선생을 처음 뵈었습니다. 당시엔 성남의 예술인 현황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아 어려움이 많았는데, 선생께서 1950년대에 전국예술가총연합회(현 한국예총)의 창립준비위원이자 초대 사무국장을 지내신 경험이 있어 큰 도움을 받았지요. 성남예총 창립 후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선생께 ‘성남예술대상’(1988)을 드리기도 했고, 그 후로도 지역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꾸준히 교류를 이어 왔습니다.
1999년에 제가 성남예총 회장을 맡으면서 선생의 업적을 정리하고 뜻을 기리는 다양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당시 성남음악협회 박용준 지부장과 함께 ‘박태현 음악상’ 제정, ‘박태현 음악제’(1999~2008) ‘박태현전국창작동요제’(2000~현재) 창설을 이루어 냈어요. 2003년부터는 ‘박태현기념사업회’를 발족해, 탄생 100주년 기념 『박태현 노래집』(2007) 발간, 박태현 노래비 건립(2008) 등의 활동을 이어 오고 있습니다.
민경찬 한국 근현대 음악 연구자이자 성남시민으로서, 작곡가 박태현에게 관심과 애정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비록 생전에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선생의 음악적 유산에 비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점이 늘 안타까웠습니다. ‘누가 누가 잠자나’ ‘산바람 강바람’ ‘코끼리 아저씨’ ‘태극기’ 등 국민 누구나 아는 동요가 선생의 작품임에도, 노래의 명성에 비해 정작 작곡가의 이름은 제대로 기억되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박용준 1982년부터 성남음악협회 창립을 준비하면서 선생과 만나 조언도 듣고, 가끔은 막걸릿잔도 기울이며 문화예술계 선후배로서 많은 교감을 가졌습니다. 예술인으로서도, 한 인간으로서도 참 멋있고 존경스러웠던 분으로 기억합니다.
박정아 할아버지는 언제나 무대 위의 음악가셨고, 창작과 지휘를 진심으로 사랑한 예술인이셨습니다. 집에서는 다소 무뚝뚝하고 말씀은 많지 않으셨지만, 가끔 연주회 준비를 도와드리러 갈 때면 열정 넘치는 모습으로 연주자들을 지도하고 무대에 오르시던 모습이 지금도 선명히 기억납니다.
Q. 작곡가 박태현의 업적과 문화예술계에 미친 영향력
김성태 박태현 선생은 음악으로 민족정신을 지켜내고자 했던 선각자였습니다. 독립 운동가였던 둘째 형 박태은 선생의 영향을 받아, 동요를 통해 어린이들에게 우리말과 정신을 전하고자 하셨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남긴 선생의 동요는 예술로 이어 온 독립 정신이지요. 예술인들에게서는 탁월한 실력과 남다른 열정을 가진 선배로 존경받으셨습니다. 평생 동요와 가곡 작곡에 매진하셨고, 작고 직전까지도 합창단, 오케스트라 등 크고 작은 공연에서 지휘봉을 놓지 않으셨어요. 60대에 접어들면서는 틈틈이 미술 활동도 병행해 국내외에서 개인 유화전도 개최하셨고요. 또 지역 예술계에는 예총 창립 과정에서 지역 문화예술의 기반을 닦고 초석을 놓은 정신적 지주이자 큰 어른으로 깊이 남아 계십니다.
김정진 광복 직후 작곡한 ‘3.1절 노래’와 한국 전쟁 발발 이후 작곡한 ‘한글날 노래’ 같은 국경일 노래 또한 선생이 남긴 중요한 업적 중 하나입니다. 이 노래들에 담긴 애국정신과 민족의 얼은 80여 년의 세월 동안 불리며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매해 3월 1일이면 선생의 묘소 앞에서 김성태 회장님, 고 김병량 전 성남시장님과 박용준 단장이 지휘하는 성남청소년오케스트라의 연주로 ‘3.1절 노래’ 헌가식을 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민경찬 박태현 선생은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 이후 근현대까지 두 세대를 아우르며 우리 음악사의 중요한 흐름을 만들어 낸 인물이십니다. 선생의 업적은 ‘어린이 사랑’ ‘나라 사랑’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3편의 동요집(1937·1947·1975)과 어린이노래책(1947)을 펴내 우리말과 노래 보급에 힘쓰셨고, 해방 후에는 이순신, 최영 등 역사 속 영웅들이 쓴 고시조에 곡을 붙여 역사 속에 묻혀 있던 우리 문학을 음악으로 다시 살려 내셨습니다. 또 클래식 교육, 특히 여성 전문 연주자 양성에 애쓰셨어요. 1954년부터 덕성여대, 숙명여대, 한양대 강단에 서셨고, 1966년 한국 최초 전문 여성실내악단 ‘서울 여성 스트링 오케스트라’(현 서울아카데미 앙상블)를 창단해 1990년까지 이끄셨습니다. 실내악이 드물던 당시 여성 전문 실내악단의 출현은 국내 클래식 음악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지요.
박용준 당시 예술의 불모지였던 성남에 예총, 음악협회 등의 단체를 조직하고 지역 문화예술이 정착하는 데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지금의 문화재단과 아트센터가 개관하게 된 것도 박태현 선생과 같은 선구자가 계셨기에 가능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선생의 유작으로 알려진 애향가 ‘나 성남에 살리라’(1993, 이용상 작사)는 성남을 아끼고 사랑했던 선생의 마음이 담긴 곡으로, 본도심과 신도시를 아우르며 하나 된 시민의식을 일깨우는 데 소중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장경환 선생이 남긴 200여 곡의 동요는 우리 음악사에 큰 유산입니다. 이전 세대 어린이들이 배우고 부르던 동요는 우리 세대로, 또 그다음 세대로 이어지며 순수한 동심과 예술적 감수성을 채우는 정서적 연결고리가 되어 줍니다.
Q. 창작오페라 <바람의 노래>에 기대하는 점
김성태 지금껏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박태현 선생의 작품과 정신을 소개할 기회가 마련된 것만으로도 매우 뜻깊게 생각합니다. 특히 지역을 소재로 한 문화예술 콘텐츠의 개발과 제작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데, 성남을 대표하는 인물로 작품을 만든다는 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앞으로도 성남의 역사와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 꾸준히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김정진 이번 공연이 우리 동요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알리는 무대가 되길 바랍니다. 아울러 박태현 선생이 가졌던 동요에 대한 애정과 어린이를 향한 따뜻한 마음, 그리고 평생 지켜 내고자 했던 민족정신이 작품 속에 온전히 담겨 탄생하길 기대합니다.
민경찬 우리나라 음악가를 소재로 한 첫 오페라이자, 그간 충분히 조명되지 못했던 작곡가의 업적을 오페라라는 종합 예술을 통해 새롭게 알리는 작품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 공연을 통해 관객들이 ‘이 동요가 박태현의 작품이구나’ 하고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원합니다.
박용준 이번 작품이 단순한 공연을 넘어, 성남 예술인과 시민이 함께 참여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박태현 선생의 애국심과 아이들을 향한 사랑,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정신이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으로 전해지길 바랍니다.
박정아 할아버지의 동요들이 재조명되는 기회가 마련되어 매우 기쁘고, 큰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남기신 동요의 가치가 온전히 지켜지고, 생전 추구하셨던 음악 세계와 열정이 잘 담긴 공연이 되길 바랍니다. 요즘 어린이들은 동요보다 아이돌 음악을 더 많이 듣고 부르잖아요. 이번 공연을 통해 어린이들을 비롯해 많은 분들이 우리 동요의 아름다움을 다시 기억하고 함께 노래할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장경환 박태현 선생의 동요를 통해 오페라의 문턱을 낮추고 세대를 잇는 공감의 무대가 되길 바랍니다. 청소년에게는 ‘오페라 음악은 어렵다’라는 선입견을 해소하는 공연이, 선생의 동요에 익숙한 7080 세대와 노년층에게는 깊은 정서적 울림을 전하는 공연이 되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