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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남아트센터의 다양한 공연 및 전시회에 대한 감상평을 함께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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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후기

제1회 성남국제무용제

기타 / 2006-10-23 01:06:11 조회 : 10860

Name 무용평론가 송종건 Subject 제1회 성남국제무용제 Homepage http://dancecriti.com.ne.kr < 제1회 성남국제무용제 > 우리나라 무용예술이 발전하지 못하는 것이 무용 ‘행사’가 적어서 일까? 지난 9월 7일부터 10일까지 4일 동안 성남아트센터에서 있었던 < 제1회 성남국제무용제 >의 52개의 작품들을 모두 지켜보고 난 다음, 평자는 과연 이런 ‘행사’가 또 만들어진 이유가 무엇인가? 도대체 이런 ‘무용제’에 독창적 성격이라는 것이 있을까? 행사 타이틀에 ‘국제’라는 것이 들어가 있는데, 이런 허접한 ‘국제’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환경의 춤’ 이라는 주제를 두었다는데, 왜 4일 동안, 때로는 하루 8시간 이상씩 평자가 지켜본 52개 작품에는 그런 주제의 냄새조차 하나도 나지 않았을까? ‘성남에서 춤추자’, ‘성남시민과 함께 즐기는 춤’ 등이라 해놓았는데, 왜 대부분 서울의 무용단의 공연인가? 무엇이 그렇게 자신이 없었기에, 이런 온갖 허황된 슬로건을 다 갖다 붙여 놓았는가? 등등의 생각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재 우리나라 무용계에는 사이비 냄새가 물씬 풍기는 무슨 무슨 협회장, 평론가, 기자, 기획자, 무용가 등등의 인간들이 무슨 무슨 ‘무용제’나, 무슨 무슨 ‘콩쿠르’ 등등 '좌판'을 벌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이런 좌판에 ‘국제’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도 정말 좋아한다. 그리고 이런 봉이 김선달들은 각종 ‘행사’에 심사위원 등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끼리끼리 패거리를 만들어서 부정심사, 국가지원금 착복하기, 병역비리 저지르기 등등을 하면서 무용계의 갈등을 조장하고 무용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러면서 물론 언제라도 법적인 문제가 되면, 사회와 격리 될 수순을 스스로 밟고 있는 것이다. 우선 이번 행사에서 성남시청 이대엽 시장의 인사말을 보면, “먼 길 마다 않고 이 축제에 참여해 주신 각 국의 무용인 여러분께 환영인사를 드린다.”라고 했는데 도대체 실제 공연에서는 눈에 띄는 외국 팀의 공연이 거의 없어, ‘국제’의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또한 행사의 뚜렷한 ‘성격’을 아무리 찾아보려고 해도 찾을 수 없었다. 이런저런 잡탕식의 기존 작품을 무대에 올려, 먹고 나면 후회되는 싸구려 뷔페의 느낌을 주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한 마디로 올바른 의미에서 이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한 것이 아니라 ‘우리도’ 혹은 ‘나도’ 이런 패거리를 모을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자신 고유의 뚜렷한 ‘성격’과 ‘목적’을 가지는 반듯한 ‘무용제’는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싸구려 잡탕식으로 패거리나 만드는 또 다른 ‘무용제를 위한 무용제’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국민과 시민들의 혈세를 낭비하면서, 올바른 무용예술 발전의 발목이나 잡는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9월 7일 저녁 8시에 성남아트센터에서 있었던 ‘개막공연’에서의 개막 공연은 국수호 디딤무용단의 <북의 소리> 였는데, 이런 공연은 ‘개막식’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로 있어야 하지 않을 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진 국립발레단 김주원, 장운규의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 안무의 < 로미오와 줄리엣 중 ‘발레 파드되’ >는 바로 며칠 전 ‘서울국제무용콩쿠르’ 개막식에서 공연한 것을 또 보는 것이라 신선한 느낌이 떨어졌다. 이어진 일본에서 왔다는 Nibroll의 < 커피 >는 우악거리는 소리를 지르기도 하는 한심스러운 해프닝이었다. 다시 보리스 예이프만 발레단의 두 무용수가 < 야곱의 꿈 >이라는 작품을 했는데, 예이프만 특유의 과장된 움직임과 안무가 설득력 없고 역겹다는 느낌까지 던지면서 답답하게 이루어졌다. 마지막 작품인 구수호의 < 고구려 중 ‘조선인의 춤’ > 공연도 국립극장에서 있었던 실제 ‘고구려’ 작품 공연에서 보다는 예술적 에너지가 많이 떨어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한마디로 첫날 개막 공연은 뭔가 진행도 엉성하면서 작품의 예술적 창의성도 살아나지 않고 있었다. 9월 8일 오후 4시 앙상블시어터에서는 ‘성남의 춤, 성남의 아티스트’라는 제목의 공연이 있었는데 첫 번째 작품 이선아의 < 내 나이 마흔 >은 무대예술로서 무용의 의미를 더욱 정확히 했으면 했다. 황미숙의 < Mother City >는 황미숙이 쉽지 않은 독무를 나름대로 열심히 이어갔으나 작품의 뚜렷한 메시지가 아쉬웠다. 이어진 이기영의 < 청춘 2006 >은 천재 화가 빈세트 반 고호의 일대기를 그린 음악 ‘Vincent'가 조용히 흐르는 가운데, 다양한 움직임과 이미지를 만들어 나갔다. 작품 후반에 좀 더 명쾌한 움직임의 포맷이 장치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창의적 컨셉을 성공적으로 만들어 무대에 표출시키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마지막 작품 김용철의 < 우화 - 삼천갑자 동방삭 이야기 >은 ‘무용’과 ‘해프닝’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더욱 연구해 보았으면 한다. 9월 8일 저녁 6시에 빛의 계단 야외공연장에서 있었던 7작품 중 눈에 띄던 작품은 김은형 안무의 떼아트르 현대무용단의 < 마주보기(Face to Face) >공연이었다. 다양한 컬러의 의상을 입은 11명의 무용수들이 부드러우면서도 화려한 현대무용움직임을 설득력 있게 이루던 이 작품은 결코 과격한 동작을 사용하지 않는데도 진한 느낌이 살아나고 있었다. 부담스럽지 않은 동작으로 이어지는 현대무용이 싱그럽고 상쾌하게 이루어지던 이 작품 안무가의 다른 작품도 눈여겨 보아야할 것 같았으며, 비록 서열(?)에 밀려 야외공연장에서 일어났지만 이번 행사 중 평자가 본 52개 국내외 작품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었다. 이날 빛의 계단 야외공연장에서 있었던 다른 6명의 젊은 안무가들의 작품은 프로무용가로서 좀 더 프로페셔널 한 움직임을 이루면서 좀 더 프로페셔널한 창의적 안무를 선보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같은 날 8시 오페라 하우스에서 ‘지구촌, 현대 춤의 만남’ 이라는 제목의 공연에도 6팀이 참여했는데, 이탈리아의 독무와 일본의 해프닝, 그리고 국내 무용가들의 재탕들이 조잡하게 이루어져 도대체 예술적 기품 같은 것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유미나의 < Boulevard > 재공연은 언제나 처럼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기민한데, 상징된 문맥이 작품에 장치되지 못해 테크닉이 나열되고 있는 느낌이었다. 김복희의 < 살꽃, 바람꽃 >도 낡은 안무방식이 무용수들의 섬세한 표현을 방해하고 있었다. 이태리 Alessio Silvestrin의 < Disappeared > 독무는 혼자서 서커스 같은 동작을 깔끔하게 이루기도 했는데, 작품 후반부로 갈수록 시간을 늘려 끄는 듯한 무리한 진행이 답답해 지고 있었다. 이어진 조성희의 < 거미줄에 걸린 꽃잎 중에서 > 재공연은 무용대회에서 무슨 상을 받았다는 것인데, 이상한 놀이 같은 유치한 움직임을 이루고 있어 객석을 창피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어진 일본 Nibroll의 < Coffee >는 하루 전 개막식에 했던 것을 재탕하고 있었는데, 화면에 무슨 ‘바다이야기’ 같은 게임 영상을 틀어 놓고 무용적 움직임은 없이 날뛰는 역겨운 모습이었다. 마지막 툇마루 무용단의 < 해변의 남자 중 탄천의 오리들 >이라는 작품도 ‘무용’을 ‘연예오락’으로 만드는 것 같은 아쉬움이 있었다. 9월 9일 저녁 6시 빛의 계단에서 있었던 야외공연은 주로 ‘한국무용’ 전공자들의 공연이었는데, 역시 어설픈 창작보다는 우리 전통에 뿌리를 둔 현대화된 한국무용공연이 훨씬 의미가 크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강미선, 백현순 등의 창작무용은 무리하고 경직된 움직임들과 단순한 안무가, 작품의 예술적 뉘앙스를 이루어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2번째 작품 김승일의 < 군취가무 >는 창의적인 도입부분에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5고무가 설득력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작품 김운미의 < 9월령가 >도 20여명의 잘 훈련된 무용수들이 우리 무용의 에너지가 살아 넘치는 움직임을 조화롭게 이루어나가 객석의 큰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같은 날 저녁 8시 오페라하우스에서 있었던 ‘전승과 창조, 우리 춤 한마당’ 이라는 제목의 공연도 실망스럽기만 했다. 도대체 우리 춤의 맥을 살려나가지 못하는 질 낮은 작품들이 섞여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행사의 참가 기준은 무엇이 되는지? 그냥 패거리나 과시해 보는 것인지? 바로 이런 부분이 평자가 이 행사의 목적을 의심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서울시무용단의 < 타의 예 >는 아름다운 자태를 보였다. 이어진 김영희 무트댄스의 < 몽(꿈처럼) >은 돼지가 목을 따는 듯한 더러운 음향 속에서 국적불명의 움직임을 뻣뻣하게 이루었는데, 도대체가 우리 전통무용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짓밟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순림의 < 현절사 >도 안무의 호흡이 길지 못해 작품의 의미를 찾기가 어려웠다. 정혜진의 < 가문 >도 김영희무트댄스 못지않게 우리 전통무용의 아름답고 우아한 모습을 짓밟고 있었다. 정혜진이 무대 중앙에서 정신없는 막춤으로 몸을 휘돌리고 있던 이 ‘해프닝’은(이런 것을 결코 ‘무용’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 한국창작무용의 비극적 현장이 되고 있었다. 이런 내용의 것들을 무대에 올린 이 ‘행사’의 ‘취지’나 ‘목적’이나 ‘성격’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들과 관계있는 공연이 끝난 다음 떼거리로 몰려 관객들이 사라진 다음 이어진 배정혜의 < 춤 춘향 중 ‘사랑’ >은 한국무용으로서는 2인무의 느낌이 났는데 마지막 함께 드러눕는 느낌은 조악했다. 마지막 인천시립무용단의 < 월인천강지곡 >은 진부한 안무 포맷이 눈에 거슬렸지만 그런대로 움직임으로 작품을 이끌어나가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9월 10일 오후 4시 앙상블시어터에서 있었던 공연에서 이원국발레단의 < 돈키호테 중 ‘그랑파드되’ >는 이원국이 완전히 새롭게 안무한 작품을, 탄탄한 개인기를 가진 단원들과 함께 힘차면서도 깔끔하게 이루어 냈다. 이윤경의 < 이중주 >는 깊은 감동이 없다. 최지연 안무의 < 율(몸으로 외치다 )>도 투명한 느낌을 만들지 못했는데, 안무가가 ‘창무회’라는 잘못된 안무패턴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있나 하는 우려를 하게 했다. 마지막으로 있었던 젊은 안무가 신종철의 < Instinct 3 >은 창의적 플롯(plot)을 작품에 장치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는데, ‘무용’ 공연에서 스토리 전달은 움직임과 이미지가 최전방에 있어야 한다. 같은 날 오후 6시부터 빛의 계단에서 있었던 야외공연에는 6팀이 참가했는데 클래식발레 2개는 클래식의 느낌을 그런대로 살려나가고 있었지만 창작 작품들은 아직도 작품의 메시지나 뉘앙스를 산뜻하게 객석에 전달하지 못하고 있었다. 9월 10일 저녁 8시부터 오페라하우스에서 있었던 8개 작품 공연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문영철 안무의 < 불의 시 >이었다. 막대를 소도구로 한 초반의 무용수들이 움직임도 설득력 있었고, 작품전체에 어떤 스토리를 담고 전개되던 이 작품은 참신한 안무포맷과 움직임으로 객석의 따뜻한 박수를 받았다. 장선희의 < 불꽃의 여자 ‘카르멘’ >도 보랏빛 조명 속에서 선명한 움직임을 만들어 나갔다. 보리스예이프만발레단의 < Escape >는 개막식 공연보다는 의미가 살아나는 이미지를 보였다. 볼쇼이발레단 배주윤과 안드레이 볼로틴의 < 돈키호테 > 2인무도 블로틴의 정교한 부축 속에 배주윤이 훨씬 더 부드럽고 풍만해진 움직임을 깔끔하게 이루어냈다. 박인자가 재안무했다는 국립발레단 전효정, 이원철의 < 해적 2막 중 그랑파드되 >는 매혹적인 느낌 같은 것을 만들지 못하고 있었고, 역시 박인자가 재안무 했다는 < 로미오와 줄리엣 중 발코니 장면 >은 3일전 이 행사의 개막식에서도 보고 그 며칠 전인 서울국제무용콩쿠르 등에서도 보았던 것이어서(그리고 그 바로 며칠 후 서울무용제 개막식에서도 또 만나게 된다), 질리려는 느낌이 있었다. 도대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립발레단에서 각종 행사에 2인무로 참가하면서 이렇게 내놓을 것이 없는지? 무엇보다도 가장 큰 피해자가 되는 것은 이렇게 연속으로 4번을 뛰는 주역 무용수들이 된다. 겹치기로 계속 재탕하는 느낌을 주는 이들의 이미지가 관객들에게 부정적으로 남을 수도 있다. 새로운 ‘창작’이 안 되는 무용단체의 불행함이 될 것이다. 서울발레시어터 제임스전의 < 1×1=? > 재공연도 때로는 무리하게 보이는 동작을 늘어놓기도 하고, 또 때로는 너무나도 깊이가 없든 단조로운 포맷을 만들기도 해 객석을 불편하게 하고 있었다. 김혜식의 < 봉선화 2인무 > 재공연도 특별한 뉘앙스나 느낌을 객석에 던지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 공연의 예술적 수준은 떨어지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일부 젊은 창작인들의 작품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성무용인들의 작품들은 이전에 공연 했다가 실패한 작품들을 일부러 모아 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내가 이런 식으로 공연해도 누가 뭐라고 할 거야 하는 ‘배 째라’는 식의 공연이 마구잡이 잡탕 식으로 전개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확인되는 것이 이번 행사가 작품의 ‘예술적 성격’이나 ‘예술성’을 보고 진지하게 만들어진 행사가 아니라, ‘패거리’ 위주로 모아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이 이 행사의 순수성과 진실성을 현저히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특히 왜 이런 행사에 국민과 시민들의 피 같은 혈세가 쏟아 부어져야하는가 하는 문제제기가 생기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송종건/무용평론가/dancecritic.com.n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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