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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후기

국립발레단의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 안무 ‘신데렐라’를 보고

기타 / 2009-04-11 10:27:17 조회 : 11714

Name 무용평론가 송종건 Subject 국립발레단의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 안무 ‘신데렐라’를 보고 Homepage http://dancecritic.com.ne.kr < 국립발레단의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 안무 ‘신데렐라’를 보고 > 장 크리스토프마이요 안무 < 신데렐라 >의 국립발레단 공연이 지난 3월 23일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있었다. 마이요의 이 작품은 1999년 3월 몬테카를로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되었고, 몬테카를로발레단이 2005년 10월 우리나라 성남아트센터에 와서 공연하고 갔으나,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우리나라 국립발레단에서 공연했는데, 성남아트센터의 공연보다는 나아진 느낌이었다. 문제는 이 발레가 또 우리가 스스로 만들고 창작한 발레가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국립발레단에는 스스로 만든 대작 창작발레 레퍼토리가 하나도 없다. 국립발레단에서 현재 공연하고 있는 작품들은 거의 모두가 외국의 안무가들의 작품이다. 러시아 안무가 유리 그리가로비치가 안무한 < 백조의 호수 > < 스파르타쿠스 > <호두까기 인형> 등이 그렇고, 이번에 공연한 마이요 안무의 < 신데렐라 >가 그렇고, 앞으로 9월에 공연한다는 보리스 에이프만 안무의 < 차이코프스키 >가 그렇다. 물론 이 모든 공연들은 공연 때마다 국민의 피 같은 혈세를 외국의 안무가들에게 저작권료로 지불해야 한다. 팸플릿을 보면 국립발레단은, “발레의 대중화, 명품화, 세계화를 목표로 한다”고 되어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립’ 발레단은 스스로 작품 창조는 하지 않는다. 세계화를 하는데, 작품 수출은 생각도 않고 수입만 하는, 수입품 하청기지가 되어있다. 우리 창작발레의 ‘정체성(identity)'은 완전히 실종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명품화 한다는데, 무엇으로 하는가? 그리고 대중화는 무엇으로 하는가? 세계화를 한다고 하면서, 수입은 안하고 수출만 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그런데 스스로 아무런 생산도 안하고, 수입만 하겠다는 것은 한마디로 완전히 식민지 지배를 받겠다는 것 밖에 안 된다. 우리도 빨리 우리들만의 고유의 발레를 만들고, 우리 국민들의 사랑을 받게 하여 발레대중화를 이루고, 외국에도 자랑스럽게 알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고유의 발레정체성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이런 예술적 창조 작업이야말로 ‘국립’발레단에서 해야 되지 않는가? 창조성(creativity)과 완전히 담을 쌓은 예술단체를 어떻게 예술단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런 상념에 쌓여 있는데 무대막이 오른다. 무대 좌측에 신데렐라가 앉아있고, 후방 쪽에서 두 명의 남녀가 움직이는데 깨끗한 느낌이 있다. 클래식의 틀을 깨는 움직임이 설득력 있고, 마이요의 안무는 그 이전 성남아트센터에서 볼 때보다 훨씬 더 깔끔하게 느껴진다. 이동되기도 하는 여러 겹의 부드러운 직사각형 모양의 판으로 된 무대장치도 세련되었다. 바닥을 깔고 있는 조명도 창의적이다. 국립발레단 단원들도 현대적 발레 움직임을 잘 소화 시키고 있다. 단지 하나 아쉽기만 한 것은 이 작품의 창조적 뿌리는 국립발레단과 전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2막 파티 장면에서도 창의적 움직임이 만들어지고 있다. 절묘한 아이디어로 입체적인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현대화된 왕자와 신데렐라의 2인무는 어쩔 수 없이 애틋한 감동을 만들지 못한다. 전통 클래식발레의 깊은 사랑 같은 것이 표출되지 못하는 것이다. 3막에서도 끝없는 창의적 움직임이 만들어지고 있었으나(이 자체는 대단한 것이다) 진부한 느낌도 들기 시작한다. 비슷한 패턴의 느낌이 반복되고 있는 아쉬움과 함께, 작품 초반의 신선한 느낌이 희석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미 앞에서 말했지만, 이번 국립발레단의 마이요 안무의 ‘신데렐라’ 공연은, 지난 2005년 몬테카를로발레단이 직접 내한하여 공연한 ‘신데렐라’ 공연보다도 그 전체적인 느낌이 좋았다. 공연 장소의 차이도 있었을 것이고, 그동안 작품 수정의 결과일수도 있고, 국립발레단 단원들의 각고의 노력의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런데 어쨌든 하나 확실한 것은, 이 작품의 ‘예술창작’으로서의 성공 자체는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의 것(혹은 몬테카를로발레단의 것)이지, 국립발레단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용평론(dance criticism)의 접근 포인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즉 첫 번째 하나는, ‘무용공연 내용’에 대한 평론이 되고, 두 번째 다른 하나는, ‘무용하는 것’에 대한 평론이 된다. 즉 ‘안무가’에 대해 이야기하는가, 혹은 ‘무용수’에 대해 이야기 하는가, 하는 것의 차이점이 된다. 우리는 이번 공연에서 국립발레단 무용수들의 컨템포러리 창작발레에 대한 적응능력은 칭찬할 수 있지만, 국립발레단은 그 작품의 예술적 우수성에 대한 찬사나 비판의 대상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현재 세계 유수의 발레단은 자신 고유의 창작발레를 만들기 위해, 발레단의 모든 것을 다 걸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자신 발레단의 상징적 지주가 되고, 한 국가의 ‘발레정체성’ 혹은 ‘국가정체성(national identity)’까지 연결되는 중요한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사실 평자는 이번 공연을 보기 전 약 1주일 전에 프랑스 파리와 영국 런던을 거치면서, 발레 선진국의 현시대 발레 현황을 취재해 보고 왔다. 특히 프랑스 파리오페라하우스에서 본 파리오페라발레단의 ‘Le Parc' 같은 작품은 움직임과 안무의 창의적 독창성 등으로 세계에 자신 고유의 발레를 무섭게 선언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물론 이번에 국립발레단이 공연한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 안무의 ‘신데렐라’의 경우는 모나코의 정체성을 확인한 모나코의 창작발레가 된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런 노력조차 하지 않고, 국민의 피 같은 혈세를 지불하며 외국 안무가의 작품을 카피하는 일만 계속 하는가? 물론 여기서도 문제점은 예술단체의 단체장의 예술창조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국립발레단 단장(혹은 ‘예술감독’이라고 하기도 한다)은 최태지로 되어있다. 그는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약 5년 동안 국립발레단 단장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이후 다른 2명이 각 3년씩 단장을 했다. 그런데 약 6년이 지난 2008년에 다시 단장이 된다. 여기서 우선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어떻게 지난 약 5년 동안의 단장 재직 시에 거의 아무런 예술창작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 또 다시 단장으로 선출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인사권자라고 하는 우리나라 문화관광부 라는 곳에 혐오와 회의를 느낀다. 사실 우리나라 국립발레단은 김혜식이 단장을 맡은 1993년부터 지금까지 약 15여년 이상을, 올바른 의미에서 우리 고유의 문화정체성을 살리는 우리 고유의 대작 창작발레 창조에는 손을 놓았다. 세계 발레가 가장 창의적으로 변하는, 가장 최근의 15년 동안 창작의 맥이 완전히 끊어져 왔다는 것이다. 초대 국립발레단 단장이셨던 임성남 선생님은 지금부터 약 50여 년 전인 1960년대 때부터 우리 고유의 창작발레 제작에 모든 힘을 쏟아왔다. 그런데 어느 틈에 그 창작의 맥이 거의 완전히 끊어져버린 것이다. 우리 고유의 발레창조라는 필연적 예술창조 작업은 요원해져 있다는 것이다.(송종건/무용평론가/dancecritic.com.n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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