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오페라 산책] 알고 보면 쉬운 오페라 이야기 | 오페라와 사랑에 빠지는 법
오페라(Opera)라는 말만 들어도 머리를 쥐어뜯는 분들이 있습니다. 주변에서 좋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막상 도전하려니 너무 복잡하고 어렵다고들 합니다. 일단 오케스트라는 클래식 음악으로 반주하고, 성악가들은 알아듣기 힘든 이탈리아어로 노래하는데,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감도 안 잡힙니다. 오페라하우스 한번 가기는 왜 그리 또 힘든지. 공연 시간은 중간 휴식 포함해 3시간을 훌쩍 넘기고 남자는 턱시도에 나비넥타이, 여성은 원피스 드레스를 입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아아, 이렇게 장벽이 높아서야 어디 엄두나 나겠습니까. 하지만 알고 보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집니다. 복잡한 이론보다 감정과 장면으로 먼저 다가오는, 생각보다 친절한 예술이니까요.
글 황지원 오페라 평론가
푸치니 오페라 <사랑의 묘약>의 한 장면 ⓒMarty Sohl/Metropoitan Opera
오페라의 탄생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오페라는 영화와 함께 생일과 출생지가 분명한 대표적인 예술 장르로 손꼽힙니다. 음악, 시, 춤, 연극 등 출발점이 불분명한 ‘자연발생적인 예술’과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중세 이후 생겼으니 그리 빠른 출발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뼈대 있는 집안의 자식인 것이지요.
오페라는 1597년에 탄생합니다. 출생지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아름다운 르네상스 도시 피렌체이지요. 당시 피렌체에서는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귀족들이 주도한 인문학 스터디 ‘카메라타(camerata)’가 도시 곳곳에서 열리고 있었습니다. 바르디 백작도 이러한 모임을 이끌던 인물 중 하나였는데, 그의 저택 살롱에서 열린 카메라타에서 고대 그리스 비극을 되살려 근대적인 음악극을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나오게 됩니다. 오페라가 탄생한 순간이지요.
르네상스는 신과 종교 중심이던 중세에서 탈피해 인간 중심의 고대 그리스 문화를 부활시키고 재생시키자는 문예 운동을 말합니다. 바르디 백작의 카메라타에 모였던 사람들 역시 고대 그리스 시대의 연극처럼 음악과 연극이 합쳐진, 신이 아닌 인간들의 이야기를 표현하고 노래하는 새로운 형태의 음악극을 만들자고 결의합니다. 이에 첫 작품이 탄생하는데 야코포 페리의 <다프네(Daphne)>입니다.
오페라는 탄생 이후 놀라운 기세로 발전해 나가게 됩니다. 베네치아와 나폴리, 밀라노 등 가는 곳마다 대성공을 거둔 오페라는 곧 전 유럽으로 퍼져 나가 왕실과 귀족은 물론, 평민들까지 열광시키는 최고의 무대 예술 장르로 자리매김합니다. 심지어 오페라에 빠져 가정사를 내팽개친 남편들이 늘어나자, 부인들이 교황에게 오페라 금지령을 내려 달라고 탄원했을 정도였지요.
어쨌든 오페라는 탄생한 지 4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최고의 예술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파리, 밀라노, 뉴욕, 빈, 뮌헨 같은 세계적인 문화예술 도시에는 반드시 세계 최고의 오페라하우스들이 있고, 또 그 도시 최고의 멋쟁이들은 항상 오페라를 즐기러 극장으로 몰려듭니다. 오페라, 멋진 인생을 위한 최고의 선택입니다!
푸치니 오페라 <라보엠>과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의 한 장면 ⓒMarty Sohl, ⓒKen Howard/Metropoitan Opera
오페라를 둘러싼 오래된 오해
‘뚱뚱한 여자들이 부르는 노래’는 한때 오페라를 비꼬아 부르는 별칭이었습니다. 오페라의 내용은 대개 남녀 간의 애절한 러브스토리인데, 이를 마이크 없이 수천 명의 관객 앞에서 노래해야 하는 성악가들에게는 당연히 풍부한 성량과 탄탄한 체력이 필수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우람한 체격이 생각나시죠?
여자 성악가 중에서도 상당히 ‘큰 체격’들이 있었습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프레디 머큐리와 함께 주제가를 불렀던 스페인의 소프라노 몽셰라 카바예(Montserrat Caballé)를 기억하시나요? 젊은 시절 검고 큰 눈망울의 전형적인 스페인 미녀였던 그녀도 성악가가 된 후에는 체중이 크게 늘었습니다. 카바예는 무대 위에서 주로 폐병이나 결핵에 걸린 가녀린 여주인공을 노래했는데, 사실 뭐 몸매만 보면 너무 튼튼해서 실없는 웃음이 나기도 하지요. 그래도 관객들은 그녀의 노래에 기립 박수를 보내고 눈물까지 흘렸습니다. 그건 오페라가 인간의 목소리라는 가장 고결한 악기로, 우리 인생의 영원한 테마인 사랑을 노래하는 예술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오페라(Opera)는 어원상 라틴어 Opus(작품)의 복수형으로, 시를 바탕으로 노래와 연기, 춤 등 다양한 예술들이 하나의 작품 안에서 결합해 무대 위에 펼쳐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인류가 창조해 낸 가장 아름다운 예술이기도 합니다.
도니체티 오페라 <사랑의 묘약>. 순박하지만 가난한 시골 청년 네모리노(테너)와 아름다운 아디나(소프라노)의 사랑을 군인 벨코레(바리톤)가 방해한다. ⓒMarty Sohl/Metropoitan Opera
소프라노와 테너가 서로 사랑하고, 바리톤은 방해한다.
오페라에도 나름대로 진행 규칙(?)이 있습니다. 소프라노와 테너가 서로 사랑하고 바리톤은 이를 방해한다는 것이지요. 우선 여성 최고음을 담당하는 소프라노(Soprano)는 누가 뭐래도 오페라의 주인공입니다. 흔히 프리마 돈나(Prima Donna, 첫 번째 여인’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로, 그날 공연의 여자 주인공을 뜻한다)라고 불리며,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청순가련형의 여성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프라노의 파트너이자 연인으로는 남성 최고음을 노래하는 테너(Tenor)가 등장합니다. 오페라 무대에서 가장 개런티가 높고 스타성을 자랑하는 성부로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 등 이른바 ‘스리 테너’는 오페라 무대의 최고 스타들이었습니다.
테너는 남성이지만 여성처럼 높은 음역을 아름답게 구사해야 하기에 전통적으로 매우 희귀한 목소리로 여겨져 왔습니다. 힘찬 남성미와 미끈한 미성을 동시에 지녀 남녀 관객 가릴 것 없이 모두에게서 사랑받지요. 오페라 속 테너들은 꽃미남 주인공 역을 담당하게 됩니다. 조각처럼 잘생긴 외모에 사랑에 목숨을 거는 로맨틱한 성격이지만, 앞뒤 안 가리고 돌진하다가 곧잘 일을 그르치는 열정적인 인물이 오페라 속의 테너 캐릭터들입니다.
중간에서 이 둘을 훼방 놓는 캐릭터는 바리톤(Baritone)입니다. 바리톤은 테너보다 음역이 낮고 베이스보다는 높은, 남성의 중간 음역이지요. 한 목소리로 캐릭터의 명암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기에, 오페라에서는 입체적이고 전략적인 사고를 하는 캐릭터로 등장하는 게 대부분입니다.
대개의 오페라는 이 세 인물의 삼각관계로 진행됩니다. 테너는 미끈한 외모를 지녔지만, 그에게는 현실적인 권력이나 재력은 없습니다. 반면 바리톤은 왕이나 귀족 같은 강력한 권력자이지만 웬일인지 여자들은 모두 테너의 품으로 달려가 안깁니다. 분노한 바리톤이 권력과 재력, 자신의 지적인 능력을 총동원해 두 사람 사이를 집요하게 방해하면서 오페라의 가장 흔한 갈등 구조가 완성되는 것이지요.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장면 ⓒMarty Sohl/Metropolitan Opera
오페라의 핵심은 아리아
오페라는 아리아(Aria)라고 불리는 독창과 그 외의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아리아는 연극의 독백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등장인물이 무대에서 홀로 노래하는 장면에서 흐르지요. 아리아가 오페라의 ‘꽃’이라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관객들은 주역 가수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하는 아리아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됩니다.
파바로티와 안드레아 보첼리, 폴 포츠 등이 불러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은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라는 노래를 기억하시지요? 이 곡도 사실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 3막에 등장하는 매우 유명한 테너 아리아입니다.
작곡가들은 아름다운 선율의 아리아를 작곡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입니다. 아무리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도 사람들의 뇌리에 오랫동안 남는 아리아가 없다면 그 작품은 성공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작곡가 도니제티는 <사랑의 묘약>이라는 코믹 오페라에 ‘남몰래 흘리는 눈물(Una furtiva lagrima)’이라는 너무나 아름답고 애절한 로망스 아리아를 삽입했습니다. 대본가는 반대했지만, 도니체티가 고집을 부려 마지막에 집어넣었다고 하는군요. <사랑의 묘약>의 명성에는 사실 이 테너 아리아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게 사실입니다.
오페라에는 아리아 외에도 서곡, 듀엣, 중창, 합창곡 등 다채로운 스타일의 음악과 노래가 풍부하게 등장합니다. 특히 합창은 말 그대로 수십 명의 성악가가 함께 노래하며 묵직한 감동을 주지요.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나 <일 트로바토레>의 ‘대장간의 합창’, 베버의 <마탄의 사수> 속 ‘사냥꾼의 합창’ 등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는 오페라 합창 명곡들입니다.
(좌) 바이에른국립오페라의 무료 스트리밍 서비스 'Staatsoper TV' / (우)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유료 스트리밍 서비스 'Met Opera on Demand'
21세기 오페라 감상법
과거의 오페라 감상은 오페라 극장에서가 아니면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21세기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오페라는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왔습니다. 지금은 PC, 스마트TV, 휴대전화만으로도 오페라를 손쉽게 볼 수 있는 시대입니다. 밀라노 라 스칼라, 빈 국립오페라하우스, 런던 로열 오페라하우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등 세계 최고의 오페라하우스들이 대표 공연을 스트리밍 서비스로 선보이고 있습니다. 작품에 따라 한글 자막이 제공되는 경우도 있어 언어적인 장벽도 상당 부분 낮아졌습니다. 바쁜 직장인도,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도, 밀라노나 뉴욕에 살지 않아도 이제는 편안한 마음으로 안방에 앉아 세계 최고 수준의 오페라를 즐길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오페라는 드라마를 통해 사람과 사회, 역사와 문화에 얽힌 여러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예술입니다. 이 때문에 순수 기악 중심의 일반 클래식 음악과는 달리, 작품 자체와 관람 행위 모두가 지극히 사회적이라는 특징도 지니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오페라는 본질적으로 ‘함께 보고, 함께 이야기하는’ 사교적인 예술 장르인 것입니다.
그러니 처음에는 안방에서 영상과 음반으로 오페라를 즐기던 사람들도 언젠가는 오페라하우스를 찾아 실연을 직접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극장에서 공연을 관람한다는 것은 대단히 아날로그적인 경험입니다. 어떤 옷을 입고 오페라하우스로 향할지 고민하는 순간부터, 누구와 어디서 만나 어떤 분위기에서 공연을 보았는지, 그리고 공연이 끝난 뒤 어떤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 식사를 즐겼는지까지, 이 모든 과정이 총체적인 ‘오페라 관람 경험’에 속합니다. 이제 우리도 그 특별한 감동을 찾아 오페라하우스로 한번 떠나 봅시다.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인 예술이 두 팔 벌려 여러분을 환영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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