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큐브미술관은 서양화가 이만나의 예술 세계를 조명하는 <헤테로토피아: 신화가 된 회화>를 선보인다. 이만나는 동시대 한국 구상회화의 흐름을 이어가는 중견 작가로, 일상 풍경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바탕으로 변화하는 미술 환경 속에서도 구상회화에 꾸준히 천착해 왔다. 작가는 회화에 대한 진지한 태도와 완성도 높은 작품 세계로 2014년 ‘종근당 예술지상’을 수상하며 일찍이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글 박은경 성남문화재단 전시기획부
이만나, <성>, 2012, oil on canvas, 194×259cm
이번 전시 <헤테로토피아: 신화가 된 회화>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제작된 작가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회화 20여 점을 선보인다. 작가의 화풍 변천과 예술 세계가 확장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전시 제목으로 차용된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는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Paul-Michel Foucault)가 제안한 공간 개념으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 공간인 ‘유토피아(Utopia)’와 달리, 현실 속에 실재하는 이질적인 공간을 가리킨다. 이번 전시는 이 개념을 작가의 작품 세계로 끌어와, 그가 포착해 온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에 놓인 공간에 대한 사유의 틀로 제시한다.
이만나 작가는 일상에서 마주한 풍경과 대상이 불현듯 ‘낯설게’ 다가오는 순간의 경험과 감정을 회화로 풀어낸다. 작가는 개인적 경험을 통해 체화된 인식의 과정을 푸코의 ‘헤테로토피아’ 개념에 빗대어 설명한다. 화면 속 공간과 대상은 언제나 이미 그 자리에 존재해 온 것들이지만, 그중에서도 작가에게 특별한 발견으로 인식된 장면만이 회화로 옮겨진다.
이만나 작가의 작업은 마주한 풍경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과정에서 출발한다. 익숙한 풍경과 대상이 문득 낯설게 인식되는 순간, 그 장면은 하나의 회화로 전환된다. 찰나의 감정과 순간을 기록한 사진에는 당시의 감정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객관적인 현장의 모습만 담겨 있지만, 작가는 이를 바탕으로 기억과 감정을 되짚으며 붓을 든다.
이만나 작가의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조형적 특징은 ‘글레이징(glazing)’ 기법이다. 유화 물감을 아주 묽게 희석해 바르고 덧칠하는 이 기법은 공간과 시간의 깊이를 표현하기 위해 투명하고 엷은 물감의 레이어를 반복적으로 쌓아 올리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물감을 칠하고 말리는 행위를 묵묵히 반복하는 작가의 노동은 고독하지만 충만한 시간이며, 이러한 축적의 과정 또한 작품의 서사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이만나, <가변 풍경>, 2022, oil on canvas, 112×145.5 cm
이만나 작가가 작품에 몰입하는 과정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시지프 신화』(1942)를 떠올리게 한다. 카뮈는 평생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형벌을 겪는 그리스 신화 속 시지프를 통해,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반복된 부조리 속에서 운명을 자각하며 삶의 의미와 자유를 찾아가는 인간의 태도를 은유했다. 모두가 불행하다고 여겼던 시지프의 삶을 ‘행복한 시지프’로 재해석한 카뮈의 시선은 학창 시절 회화의 의미와 확신을 고민하던 이만나 작가에게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작가가 회화에 임하는 태도는 일상의 다양한 부조리 속에서도 버티고 견디며 각자의 가치와 행복을 찾아가는 우리의 평범한 삶과 맞닿아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의 회화가 품고 있는 반복과 몰입의 시간을 따라가며, 관람객 또한 자신의 일상을 다시 바라보는 조용한 교감의 순간을 마주하길 바란다.
2026 성남작가조명전Ⅰ 이만나 <헤테로토피아: 신화가 된 회화>
일시 | 2월 27일(금)~4월 26일(일)
장소 | 성남큐브미술관 반달갤러리
문의 | 031-783-814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