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을 대표하는 명문 교향악단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오는 3월 28일(토)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을 찾는다. BBC 심포니는 런던 심포니, 런던 필하모닉, 로열 필하모닉,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더불어 ‘런던의 빅 파이브Big Five’로 일컬어지지만, 영국 내에서의 높은 지명도에 비해 세계적으로는 다른 악단들보다 덜 알려진 경향이 없지 않다. 하지만 BBC 심포니의 음악적 역량은 영국 최고로 평가받는 런던 심포니와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글 황장원 음악 칼럼니스트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 ⓒCanetty-Clarke
13년 전 BBC 심포니의 마지막 내한 공연은 이 악단의 예술적 정체성과 잠재력을 분명히 각인시킨 무대였다. 2013년 가을, 당시 계관(桂冠)지휘자였던 고(故) 앤드루 데이비스와 내한한 BBC 심포니는 무척 인상적인 공연을 펼쳐 보였다. 엘가, 월튼, 브리튼 등 우리 청중에게는 다소 낯선 영국 작곡가 작품들로만 구성된 프로그램이었음에도 노련한 해석과 훌륭한 연주력으로 사뭇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 그 무렵 앞서 거론한 ‘빅 파이브’가 수개월 간격으로 모두 내한했기에 나란히 비교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졌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만족스러웠던 공연이 BBC 심포니였다. 연주의 완성도에 초점을 맞추자면 더 나은 악단도 있었지만, 연주와 해석의 조화, 음악이 주는 감동과 즐거움, 영국 악단으로서의 정체성 등을 고루 잘 보여 준 쪽은 BBC 심포니였다. 특히 브리튼의 <바다 간주곡>과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에서 그들이 들려준 긴밀하고 풍부하며 설득력 있는 연주는 이들 명작의 매력과 가치에 대한 기존 인식을 새롭게 하기에 충분했다.
BBC 심포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BBC 프롬스(Proms)일 것이다. 매년 여름 런던의 로열 앨버트 홀에서 열리는 이 대중적인 클래식 음악 축제의 간판 오케스트라가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프롬스에서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을 연주하면, 영국 관객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유니언잭을 흔들며 ‘희망과 영광의 나라’를 제창하는 장면은 클래식 애호가라면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로 인해 ‘영국의 일반 대중이 사랑하는 교향악단’ 정도로 축소된 이미지가 따라다니기도 하지만, 그것은 다분히 편향된 인식이다.
지휘자 사카리 오라모
가장 영국적인 악단과 핀란드에서 온 거장
1930년 영국방송공사BBC 산하 단체로 출범한 BBC 심포니는 가장 영국적인 정체성과 폭넓은 국제적 스펙트럼을 겸비한 악단이다. 영국적 정체성은 태생적 기질을 바탕으로 에이드리언 볼트, 맬컴 사전트, 콜린 데이비스, 존 프리처드, 앤드루 데이비스 등 자국 출신 수장들과의 오랜 파트너십을 통해 다져진 것이고, 국제적 스펙트럼은 헝가리 출신의 언털 도라티, 프랑스의 피에르 불레즈, 소련의 겐나디 로즈데스트벤스키, 체코의 이르지 벨로흘라베크 등 다양한 국적의 명장들을 주기적으로 맞아들이며 형성된 것이다. 이번에 함께 내한하는 현임 수석지휘자 사카리 오라모는 핀란드 출신이다.
올해로 14년째 악단을 이끌고 있는 사카리 오라모는 근래 국제 무대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요르마 파눌라 사단’의 일원이다. 즉, 에사페카 살로넨과 유카페카 사라스테의 후배이고, 클라우스 메켈레와 산투마티아스 루발리의 선배이다. 그가 국제적 주목을 받게 된 계기는 1998년, 사이먼 래틀의 뒤를 이어 버밍엄 시립교향악단(CBSO)을 맡으면서부터다. 특히 CBSO와 함께 녹음한 그리그 관현악곡집과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집 음반(Erato)은 널리 호평받았다. 그 후 핀란드 방송교향악단과 스웨덴의 로열 스톡홀름 필하모닉을 연달아 맡으며 북유럽의 맹주로 부상했고, 2013년의 프롬스 시즌 첫날 BBC 심포니의 제13대 수석지휘자로 취임한 이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 ⓒMarco Borregreve
후기 낭만과 현대를 아우르는 관현악의 향연
이번 오라모와 BBC 심포니의 성남 공연은 다채로우면서도 주도면밀한 프로그램으로 각별한 관심을 끈다. 먼저 작곡가의 국적 면에서 독일과 헝가리, 영국과 러시아를 아우른 점은 악단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온전히 드러내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후기 낭만주의 관현악의 극치를 보여 주는 R.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돈 후안>과 스트라빈스키의 환상적인 발레 음악 <불새> 모음곡은 악단의 뛰어난 기량과 풍부한 자원을 아낌없이 활용하기에 적합한 레퍼토리들이고, 버르토크 피아노 협주곡 3번과 핀지의 <에클로그>는 피아노와 관현악의 어울림을 통해서 보다 현대적인 음률을 맛보여 줄 것이다. 이 두 곡에서 협연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맡는다.
참고로 버르토크와 핀지의 작품은 20세기 전반부에 나온 곡치고는 그리 난해하지 않으니 괜한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특히 20세기 영국 음악의 부흥기를 이끈 작곡가 중 한 명인 제럴드 핀지의 <에클로그>는 특유의 서정적이고 명상적인 어법이 두드러지는 아름다운 작품으로, 많은 관객들에게 새로운 발견의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그런가 하면 지휘자의 장기인 북유럽 음악(시벨리우스 또는 닐센)은 앙코르로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해 본다.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 사카리 오라모 & 손열음
일시 | 3월 28일(토) 오후 5시
장소 |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
문의 | 031-783-8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