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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3월호

CULTURE
[공연장 옆 영화관]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 소녀는 왜 진주 귀걸이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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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 가면 해당 지역의 미술관을 찾곤 한다. 출장 중이라도 가능한 한 시간을 내어 들른다. 실제 그림은 도록이나 컴퓨터 모니터로 보는 것과는 분명 다르니까. 옛 그림을 보며 종종 상상하게 된다. 그림은 시대상을 품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자연스레 예전 사람들의 삶을 머릿속에 그려 보게 된다.


라제기 한국일보 영화 전문기자

1999년 한국일보 입사 후 편집부와 사회부, 국제부 등을 거치며 엔터테인먼트 팀장과 문화부장, 신문에디터로 일했다. 2004년부터 영화를 취재해 왔으며, 영국 서식스대 대학원에서 영화학을 공부했다. 저서 『질문하는 영화들』 『말을 거는 영화들』, 역서 『할리우드 전복자들』로 영화를 사랑하는 독자들과 소통하는 한편, 뉴스레터 ‘영화로운’으로 매주 구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어떤 그림은 그림 속 인물이 유독 호기심을 자극한다. 한 시대를 호령했던 왕이나 귀족의 생김새는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물론 유명인의 인물화는 실제보다 미화된 경우가 많지만 말이다. 이름 없는 인물을 담은 그림은 더 오래 시선을 붙든다. 그림의 대상이 된 인물은 화가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왕도 귀족도 아닌데 어떻게 그림의 주인공이 됐을까 하는 궁금증이 이어지곤 한다.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1632~1675)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그런 질문들이 뒤따르는 작품이다. 그림 속 소녀가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아서다. 베르메르의 딸일 수 있다는 추정이 있기도 하나, 확인된 사실은 없다. 이국적인 터번, 수수한 옷차림과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진주 귀걸이. 그림을 보고 있자면 상상이 날갯짓을 시작한다. 소녀는 베르메르를 후원한 부호의 딸이었을까, 아니면 베르메르가 연모한 젊은 여인이었을까, 과작으로 유명한 베르메르가 어떤 연유로 붓을 들었는지, 차림새에 맞지 않게 진주 귀걸이를 하게 된 사연은 또 무엇이었을까.


미국 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이런 궁금증을 상상으로 풀어내 소설 『진주 귀걸이 소녀』(1999)를 썼고,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2003)는 그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알려진 것이 거의 없기에 더 신비롭게 느껴지는 그림이, 소설과 영화를 통해 또 다른 생명을 얻는다.

 

개신교 하녀와 가톨릭 주인
1665년 네덜란드 델프트. 흐릿(스칼릿 조핸슨)은 가난한 집안의 딸이다. 도자기를 만들던 아버지가 눈이 멀면서 집안 형편이 급격히 기울었고, 그는 하녀로 일하기 위해 가족의 곁을 떠난다. 그를 향한 어머니의 당부가 예사롭지 않다. “미사는 얼씬도 하지 말고, 가톨릭 기도를 들으면 귀를 막거라.” 개신교(칼뱅파) 집안에서 자란 흐릿이 가톨릭 신자들이 사는 집으로 들어가게 됐음을 암시하는 말이다. 30년 전쟁(1618~48)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이니 강한 경계심을 품을 만하다. 이교도 집안에 딸을 보내야 할 만큼 흐릿 가족의 사정이 절박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흐릿이 일하게 된 곳은 화가의 집이다. 집주인 베르메르(콜린 퍼스, 영화 자막에서는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페르메이르’)는 그림을 그려 생계를 이어 간다. 아내 카타리나(이시 데이비스)는 늘 신경이 곤두서 있다. 친정어머니까지 함께 살며 식솔은 많지만 베르메르의 수입은 넉넉하지 않아서다. 그림 한 점에 오랜 시간과 값비싼 재료를 쏟아 붓는 그의 작업 방식은 가계를 위태롭게 만든다.

하녀 흐릿에게 이 집은 편치 않다. 엄연한 상하 관계 속에서 조심스럽게 몸을 낮춰야 한다. 무엇보다 쫓겨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가족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흐릿은 특히 베르메르를 대할 때 긴장한다. 남자인 데다 예술가 특유의 예민함 때문에 거리를 두고 싶었을 법하다.

흐릿과 베르메르 사이에 사랑이 싹트기에는 넘어야 할 장벽이 많다. 종교가 다르고, 신분이 다르며, 그는 이미 가정을 꾸린 사람이다. 흐릿에게는 최근 알게 된 푸줏간 집 아들 피터르(킬리언 머피)라는 현실적인 선택지도 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조금씩 가까워진다. 먼저 다가가는 쪽은 베르메르다. 그는 흐릿의 미적 감각을 알아보고 물감 재료를 사 오게 하거나 물감 제조를 맡긴다. 흐릿 역시 그가 보내는 호감이 싫지 않다. “창틀을 닦으면 빛이 바뀔까 봐”라며 작업실 청소를 망설일 만큼, 흐릿은 미술을 이해하고 동경한다. 그런 흐릿에게 베르메르는 매혹적인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보였을 것이다.

 

 

자기 방식으로 사랑한 두 사람
서로에게 다가갈 듯 다가가지 못하는 두 사람 사이에 불청객이 끼어든다. 베르메르의 후원자 판라위번(톰 윌킨슨)이다. 그는 흐릿에게 노골적인 욕망을 품고 자신과 흐릿을 함께 화폭에 담으라고 베르메르에게 명령한다. 흐릿을 곤경에 처하게 할 수 있는 요구다. 하지만 후원자에게 잘못 보여서는 생계가 흔들릴 수 있다. 영화는 이 곤란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탄생한 그림이 바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라고 설정한다.

영화는 베르메르와 흐릿의 감정을 직설하지 않는다. 흐릿이 완성된 그림을 바라보며 잠시 짓는 표정(자신이 위대한 예술에 일부 기여했다고 흡족했을지 모른다), 베르메르가 무심한 듯 넌지시 흐릿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서로를 향한 마음을 표현한다. 흐릿의 감정이 연정인지 동경인지는 불분명하나, 베르메르가 그를 이성으로 바라보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림 작업이 이어질수록 베르메르와 흐릿의 묘한 교감은 더 깊어진다. 베르메르는 흐릿이 모자를 벗고 머리칼을 드러낸 순간을 몰래 훔쳐본다. 당시 여성에게는 금기였던 장면이다. 아내의 진주 귀걸이를 흐릿에게 걸어 주는 장면 역시 노골적인 설명 대신 강한 상징으로 남는다. 두 사람의 관계를 말없이 드러내는 순간들이다.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속마음을 표하기도 한다. 베르메르는 흐릿을 위해 오랫동안 고수해 온 작업 방식에서 벗어나고, 흐릿은 그림을 위해 그의 까다로운 요구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사랑이라는 말은 끝내 입 밖으로 내지 않지만, 서로를 향한 감정을 관객은 어렵지 않게 읽어 낸다. “왜 나는 안 그려 주냐”는 아내의 질문에 베르메르가 “당신은 이해 못 하잖아”라고 쏘아붙이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그에게 흐릿은 연인이라기보다, 적어도 예술적 동반자 같은 존재였으리라.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북유럽의 모나리자’로 불린다.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의 명작 <모나리자>에 비견될 만한 명작이라는 의미에서다. <모나리자>처럼 눈썹이 없는 얼굴, 그리고 끝내 밝혀지지 않은 소녀의 정체. 알려진 게 거의 없기에 그 미소가 더욱 신비롭게 다가오는 걸까. 이 그림이 그리고 이 영화가 지금까지도 관객을 매혹시키는 이유일 것이다.

 

베르메르의 명작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3월 8일(일)까지 성남큐브미술관 기획전시실에서 레플리카 전시로 만날 수 있다.

 

사진 제공 www.ala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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