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기술의 만남은 더 이상 낯선 실험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기술을 얼마나 능숙하게 다루느냐를 넘어, 그것을 창작자의 언어로 어떻게 해석하고 확장해 나가느냐다. 성남문화재단이 올해 새롭게 조성한 <아트×테크 창작랩>은 예술가와 기술 전문가, 시민이 함께 배우고 실험하며 교류하는 창작의 거점이다. 이곳에서 창작자들은 실험과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서로의 자원이 되고, 지역 안에서 새로운 예술기술 융합 생태계를 만들어 간다. 창작랩을 함께 기획·운영하는 김도원·구래연 기획자를 만나 이 공간의 가능성과 앞으로의 방향을 물었다.
글 손세은 성남문화재단 홍보기획부 | 사진 최재우
<아트×테크 창작랩>의 기획운영을 맡고 있는 김도원(좌)·구래연(우) 기획자
기획자 김도원
예술기술 융합 분야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 기획자입니다. 2024년 성남문화재단의 <모든예술31> 예술기술융합프로젝트 심층 모니터링 및 평가 연구원으로 참여해 창작자들을 위한 중장기적 지원 정책 마련과 신규 사업 기획 연구를 담당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업스케일링 성남> 사업 기획과 설계를 함께 했습니다. 2025년 <업스케일링 성남> 1기 코디네이터로 활동했으며, 올해 <업스케일링 성남> 2기와 <아트×테크 창작랩>의 기획·운영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기획자 구래연
인간과 비인간 생명체, 기술 사이의 다층적인 관계를 탐구하는 예술가입니다. 공간적 경험과 생태적 인식에 깊은 관심을 두고 설치, 사운드, 영상 참여형 워크숍 등을 통해 인간의 인식을 넘어 그 경계 안팎에서 일어나는 보이지 않는 역동성과 순환적 변화를 탐구하고 있습니다. 성남에서는 도시의 다양한 공간에서 사운드스케이프를 수집하고, 이를 통해 감각과 인식의 방식을 탐구하는 프로젝트를 이어 오고 있습니다. 2025년 <업스케일링 성남> 1기 참여 작가로 활동했으며, 올해에는 <아트×테크 창작랩>의 기획·운영과 뉴아트 클럽 ‘필드 레코딩’의 클럽장을 맡고 있습니다.
올해 새롭게 마련된 <아트×테크 창작랩>은 어떤 공간인가요?
김도원 <아트×테크 창작랩>은 예술기술 융합에 관심이 있는 창작자들이 모여 함께 연구하고 다양한 실험을 통해 융복합 창작물을 만들어 내는 공간입니다. 예술기술 분야 창작자들의 구심점이자 커뮤니티가 이루어지는 곳인데요, 지난해 <업스케일링 성남> 1기에 참여한 작가들이 올해는 이곳에서 ‘뉴아트 클럽’이라는 스터디 그룹을 이끌어 가고, 올해 <업스케일링 성남> 2기 참여 작가들과 교류합니다. 특정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모이고, 쉬고, 창작할 수 있는 우리만의 공간이 생긴 셈이지요. 자연스러운 교류와 창작이 이뤄지는 영감의 샘터, 예술기술 발전소와 같은 곳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구래연 <아트×테크 창작랩>은 단순히 기술을 지원하기 위한 공간이라기보다는, 예술가가 기술을 실험하고 자신의 언어로 소화해 가는 과정 자체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운영됩니다. 예술기술 융합 창작자들을 위한 기존의 지원사업들이 결과 중심이었다면, 이 창작랩은 과정 중심으로 실험과 실패를 허용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기술을 ‘도구’로만 보지 않고, 예술가의 사고방식 자체를 확장하는 ‘매개’로 다룬다는 점도 기존 지원사업과의 차별점입니다.
<아트×테크 창작랩> 안에서 각각 맡고 계시는 프로그램과 운영 방향을 소개해 주세요.
김도원 제가 맡고 있는 ‘뉴아트 클럽’은 예술기술 융합에 관심 있는 창작자 중 초심자부터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일종의 스터디 그룹입니다. 현재 총 8개의 클럽이 개설되었고, <업스케일링 성남>의 1기 작가들과 1·2기 멘토들이 클럽장이 되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뉴아트 클럽은 예술기술 융합 분야 입문자들에게 진입 기회를 열어 주는 동시에, <업스케일링 성남> 참여 작가들에게는 지속적인 창작과 성장, 지역 안에서 커뮤니티를 이어 갈 수 있는 선순환의 구조를 만들어 주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구래연 저는 앞으로 진행될 ‘기술 융합 실험실’과 다양한 네트워킹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뉴아트 클럽이 기술 습득과 학습 중심의 커뮤니티라면, 기술 융합 실험실은 소규모 심화 창작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저는 기획과 운영을 담당하고 있지만, 동시에 실험을 함께하는 참여자에 가까워요. 이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점은 지속 가능성과 자기 언어화, 관계 형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술을 배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기술이 자신의 작업 언어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참여자들이 스스로 정의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그래서 단순한 교육보다, 서로의 작업을 공유하고 피드백하는 구조를 중요하게 보고 있습니다.
지난해 <업스케일링 성남> 1기 기획자와 참여 작가로 활동하신 경험이 <아트×테크 창작랩>을 기획·운영하시는 데 어떤 바탕이 되었나요?
김도원 <업스케일링 성남> 1기에 이어 2기에서도 기획자로 함께하고 있는데요, 1기 참여 작가들이 서로 도와주고 배움을 주고받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예술기술 융합 창작자들에게는 단발성 지원을 넘어 지속적으로 만나고 실험할 수 있는 공간과 관계망이 필요하다는 점을 체감했습니다. 그 경험이 <아트×테크 창작랩>을 기획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창작자들이 프로그램이 끝난 뒤에도 서로 교류하고 새로운 창작을 이어갈 수 있는 지속성 있는 구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구래연 다른 기관에도 비슷한 예술기술 융합 성장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업스케일링 성남>의 경우 같은 지역에 있는 예술가들과 함께 호흡하고 공감대를 이루면서 작업해 나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업스케일링 성남> 1기에 참여하면서 지역의 다양한 작가들을 알게 되어 서로 관계를 맺고 소통하면서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 동료가 생겼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또한 참여 작가로서 ‘이랬으면 더 좋았겠다’라고 느꼈던 점과 동료 작가들과 나눴던 피드백을 올해는 기획자로서 시도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예술가가 기술을 만날 때 현실적으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김도원 열린 마음과 수용하는 태도, 도전하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가에게 새로운 기술을 더해 자신의 작업을 확장하는 일은 처음에는 낯설고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때로는 생각한 것과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고요. 그럼에도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작업에 조금씩 더해 보며 계속 실험해 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사실 장비나 공간, 커뮤니티 네트워크, 멘토링 프로그램 등은 이미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만 되어 있다면 이곳에서 역량과 기술 수준을 높이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구래연 여러 요소가 있지만 기술을 자신의 언어로 번역할 수 있는 시간과 구조가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장비나 공간도 물론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행착오를 반복할 수 있는 환경과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기술 협업에서는 서로 다른 예술적·기술적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만나기 때문에 그 사이를 연결해 주는 중간 구조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아트×테크 창작랩>의 운영 과정에서 인상 깊은 순간이 있다면요?
김도원 참여 작가들의 성장이 가장 크게 느껴졌습니다. <업스케일링 성남>이 누군가에게는 ‘디자이너’에서 ‘작가’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고, <뉴아트 클럽>을 통해 배우는 입장에서 다른 참여자를 이끄는 클럽장으로 성장할 기회가 마련되었습니다. 예술기술 융합 스킬뿐만 아니라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역량과 자신감, 자존감을 북돋아 주는 안전한 창작의 울타리가 만들어진 것이죠.
구래연 저 역시 참여자들의 태도 변화가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처음에는 기술에 부담을 느끼거나 스스로를 특정 장르 안에 한정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점차 기술을 자신의 작업 안으로 끌어들이고 서로 협업하면서 ‘뭔가 해 볼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멘토와 멘티의 관계도 점차 서로 배우고 제안하는 동료적 관계로 확장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현장에서 체감하는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트×테크 창작랩>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할까요?
김도원 예술기술 융합의 분야는 굉장히 광범위하고 그만큼 창작자의 정체성도 다양합니다. 가상세계, 피지컬, 오디오 비주얼 등 다양한 세부 분야를 폭넓게 포괄하면서도 성남의 예술기술융합프로젝트만의 방향성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합니다. 창작자들의 실제 수요와 행정적 요건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 나갈 것인가 또한 운영 측면에서 고민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구래연 참여 작가이자 기획자로서 시간과 지속성의 문제가 가장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기술을 기반으로 한 작업은 단기간에 완성되기 어렵고 지속적인 실험과 수정이 필요한데, 지원 구조는 단기 프로젝트 중심인 경우가 많습니다. 행정적·예산적 한계가 있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적어도 3~5년 정도 장기 프로젝트로 진행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또한 기술 인력과 예술가를 연결하는 구조가 아직은 충분히 안정적이지 못해, 앞으로 더 보완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성남의 예술기술 융합 창작 생태계가 어떤 방향으로 성장하길 기대하시나요? 그 안에서 <아트×테크 창작랩>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김도원 <아트×테크 창작랩>이 성남의 예술기술 융합 창작 생태계의 근원이자 발전소가 되길 바랍니다. 이를 위해 먼저 1단계로 ‘뉴아트 클럽’을 통해 예술기술 융합에 관심 있는 분들이 유입되고, 2단계로 <업스케일링 성남>을 통해 역량 있는 예술가들이 모여 협업하며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보고, 3단계로는 ‘기술 융합 실험실’을 통해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흐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이 각각의 단기 프로젝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창작랩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를 가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구래연 저 또한 <아트×테크 창작랩>이 예술과 기술을 단순히 결합하는 수준을 넘어, 하나의 생태계로 작동하는 구조로 성장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실험이 축적되고 관계가 지속되며 작업이 확장됨으로써, 창작랩 자체가 예술기술 융합의 플랫폼 역할을 하면 좋겠어요. 특히 성남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작가들이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는, 성남만의 특장점을 가진 예술기술 융합 플랫폼으로 자리 잡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기획자로서 계획과 각오를 들려주세요.
김도원 프로그램의 큰 틀은 정해져 있지만, 참여자와 상황에 따라 필요한 것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유연하게 움직이는 기획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구래연 기획자가 작가의 관점에서 질문과 아이디어를 많이 제안해 주고 있어서, 저는 그것이 실행될 수 있도록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두 사람의 호흡이 잘 맞는 만큼, 창작랩도 앞으로 더 단단하게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구래연 창작랩은 올해 첫발을 내디딘 만큼, 아직 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는 단계입니다. 저는 참여자의 변화와 현장의 흐름을 가까이에서 살피며, 이 공간이 함께 실험하고 조정해 가는 구조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참여자들과 함께 시행착오를 쌓아 가며, 창작랩이 자기만의 형태를 찾아 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