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사노바(Bossa Nova)는 1950년대 후반에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생겨난 음악입니다. 스윙 재즈를 지나 재즈의 중심축이라 할 수 있는 비밥을 필두로 모던 재즈가 1940~50년대 휘몰아친 후, 새로운 흐름이 꿈틀거릴 때입니다. 프랑스의 누벨바그(Nouvelle Vague), 아르헨티나의 누에보 탱고(Nuevo Tango), 영국에서 시작해 미국에서 꽃피운 팝 아트(Pop Art) 모두 비슷한 시기에 등장해 전 세계 예술가와 애호가를 사로잡은, 이른바 ‘새로운 물결(New Wave)’이었지요. 보사노바는 카니발의 심장이자 영혼인 삼바Samba의 격정적인 리듬과는 달리 어쿠스틱 기타와 차분한 보컬로 표현한 도시 음악입니다. 1950년대 미국 서부에서 인기를 얻은 쿨재즈Cool Jazz의 상큼한 선율과 정제된 리듬에서 영향받았고 이후 미국으로 역수출되어 큰 사랑을 받게 됩니다.
글 김광현 월간 <재즈피플> 편집장 | 일러스트 박양수
브라질 보사노바 음악을 대표하는 얼굴들
왼쪽부터 색소포니스트 스탄 게츠(1927~1991),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1927~1994), 기타리스트이자 보컬리스트 주앙 지우베르투(1931~2019)
보사노바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작곡가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Antonio Carlos Jobim, 1927~1994)은 1958년 발표된 최초의 보사노바 곡으로 인정받는 ‘Chega de Saudade’를 비롯해 ‘The Girl from Ipanema’ ‘Desafinado’ ‘Agua De Beber’ ‘Wave’ ‘Insensatez’를 만들었습니다. 대학에서는 건축학을 전공했지만, 타고난 음악적 재능으로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라이브 클럽 등지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립니다. 그리고 보사노바에서 빠질 수 없는 낭만적인 노랫말은 브라질의 시인이자 작사가인 비니시우스 지모라에스(Vinicius de Moraes, 1913~1980)가 맡았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보사노바 대부분이 리우데자네이루 출신인 조빙과 비니시우스의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비니시우스가 쓴 희곡을 바탕으로 한 연극 <경축일의 오르페우>(Orfeu da Conceição, 1956)에 조빙이 참여한 것이 시작이었고, 이 연극은 3년 후 영화 <흑인 오르페>(Orfeu Negro, 1959)로 제작되어 보사노바를 세계에 알리는 불쏘시개가 됩니다. 영화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비극을 현대 브라질 카니발로 옮긴 작품으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비롯해 제32회 아카데미 시상식과 골든 글로브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았습니다.
전 세계에 이파네마 해변을 알리다
브라질 음악인 보사노바가 재즈 시장에서 하나의 스타일로 자리 잡게 된 결정적 계기는 걸작 의 큰 성공 때문입니다. 보사노바 씨앗을 미국에 가져온 재즈 기타리스트 찰리 버드(Charlie Byrd)가 테너 색소포니스트 스탄 게츠Stan Getz와 발표한 (Verve, 1962)가 이전에 있었지만, 역사적인 타이틀은 가 차지합니다. 보사노바의 핵심인 ‘보컬 중심 형식’을 완벽히 살린 는 대성공을 거두며 타이틀 곡 ‘The Girl from Ipanema’(원제 Garota De Ipanema)는 비틀스가 석권하던 1964년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5위까지 올랐습니다. 보사노바가 만들어진 1958년 이후 미국에 소개된 보사노바 음반이 대부분 기악 연주 중심인 재즈 콘셉트를 따랐다면 는 거기에 보컬을 더한 것이 중요한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재즈 지분은 재즈 거장 스탄 게츠, 보사노바 원형은 브라질 출신 기타리스트이자 보컬리스트 주앙 지우베르투, 그리고 음악은 대부분의 곡을 작곡하고 피아노를 연주한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이 책임졌습니다.
에는 숨은 공로자가 있는데 바로 주앙의 아내인 아스트루드 지우베르투(Astrud Gilberto)입니다. ‘The Girl from Ipanema’에서 주앙이 포르투갈어로 부르는 1절에 이어 2절은 영어가 가능했던 아스트루드가 다소 급작스럽게 섭외되어 영어로 부릅니다. 그런데 역사가 그렇듯 주앙보다 아스트루드가 주목받게 되면서 5분대로 다소 긴 ‘The Girl from Ipanema’를 주앙 부분을 빼고 아스트루드 노래만 살린 2분대 라디오 버전까지 발매합니다. 브라질 바이아 태생인 아스트루드는 독일계 아버지와 브라질계 어머니의 혼혈로 이후 브라질 노래뿐 아니라 재즈와 팝을 자신의 스타일로 재해석하며 보사노바 여왕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브라질에서 미국을 거쳐 전 세계로
1960년대 재즈 신은 모던 재즈의 광풍 이후 다채로운 스타일로 분화합니다. 보사노바, 프리 재즈, 소울 재즈, 에스닉 재즈, 그리고 60년대 후반 록과 재즈가 섞인 재즈 퓨전까지 등장합니다. 이 중 대중에게서 사랑받은 스타일은 당연히 보사노바로 재즈 보컬의 여왕 엘라 피츠제럴드, 새라 본과 재즈와 팝의 거물 프랭크 시나트라 등 전설들이 보사노바를 적극 소화해 노래합니다. 정식 음반 발매뿐 아니라 라이브 때마다 보사노바 한두 곡은 꼭 부르고, 이와 같은 경향은 현재 재즈 콘서트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컬리스트뿐 아니라 찰리 버드, 조 핸더슨, 행크 모블리 등 주류 재즈 연주자까지 보사노바 시장에 적극 가담합니다.
보사노바는 이후 재즈 장르에만 머물지 않고 팝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1973년 데뷔한 싱어송라이터 마이클 프랭스(Michael Franks)는 차분한 보사노바 리듬을 살린 노래 ‘Antonio’s Song’ ‘Vivaldi’s Song’ ‘Down In Brazil’로 보사노바의 저변을 넓힙니다. 그리고 보사노바뿐 아니라 브라질 대중음악(MPB, Música Popular Brasileira)을 대표하는 카에타노 벨로주(Caetano Veloso)가 스페인 영화 <그녀에게>(Hable Con Ella, 2002)에서 직접 부른 ‘Cucurrucucu Paloma’가 감동을 주기도 했습니다.
보사노바가 가진 편안한 리듬은 한국 대중음악에 영향을 미쳐 그룹 어떤날의 ‘오래된 친구’,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 김현철의 ‘춘천 가는 기차’, 장필순의 ‘어느새’와 같은 보사노바 가요도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을 만들고 부른 조덕배는 보사노바 전문 가수라 해도 될 활동을 보여 주었습니다.
보사노바는 삼바의 리듬을 ‘줄이고’, 재즈의 화성을 ‘더한’ 특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지금까지 그 가치를 이어 오고 있습니다. 조빙이 만들어 놓은 틀이 완벽해서일 텐데 그 흐름을 지난 2016년 리우 하계올림픽에서 확인했습니다. 한 나라가 가진 예술적 자부심을 보여 주는 개막식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The Girl from Ipanema’가 나오는 장면이었습니다. 조빙의 영상을 배경으로 무대에서 노래한 아티스트가 손자 다니엘 조빙이었습니다. 개막식 경기장을 메운 관객뿐 아니라 저도 노래를 따라 불렀습니다. 이렇게 보사노바는 전 세계가 함께 부르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추천 음반
스탄 게츠/주앙 지우베르투(Stan Getz and João Gilberto): Getz/Gilberto | Verve, 1964
어떤 앨범을 들어야 하나 고민이 된다면 바로 를 선택하면 됩니다. 1962년 카네기홀 콘서트를 계기로 미국에서 기반을 마련하게 된 조빙과 지우베르투가 1964년 3월, 미국에서 녹음한 기념비적인 음반이죠. 테너 색소포니스트 스탄 게츠, 기타와 보컬로 보사노바의 전형을 제시한 주앙 지우베르투, 그리고 시작은 미미했지만 이후 큰 역할을 하는 아스트루드 지우베르투의 노래까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1964년 제7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7개 부문 후보에 올라 올해의 앨범과 올해의 레코드 등 총 4개 트로피를 거머쥔 명반입니다.
리사 오노(Lisa Ono): Pretty World | Suite¡ Supuesto!, 2000
브라질 상파울루 출신으로 포르트갈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보사노바의 여신 리사 오노의 대표작입니다. 한때 대한민국 TV-CF에서 자주 만났던 상큼한 리사 오노의 목소리와 기타 연주를 만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스티비 원더 ‘My Cherie Amour’, 비틀스 ‘Yesterday’ 등 팝의 명곡을 차분히 보사노바로 다시 불러 폭넓게 사랑받은 음반이죠. 타이틀 곡 ‘Pretty World’는 브라질 음악의 거장 세르지오 멘데스가 1969년에 발표한 곡으로 원곡을 재소환시키기도 했습니다.
더블 레인보우(Double Rainbow): Letter From Rio | Universal Music, 2007
조빙이 발표한 곡명을 밴드명으로 한 더블 레인보우가 발표한 는 한국 최초로 보사노바만을 담은 음반입니다. 국내 재즈 아티스트 중 각 악기에서 최고의 연주자가 모인 드림팀으로 리더이자 기타리스트 김민석을 중심으로 7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녀는 리우 출신이에요Ela É Carioca’를 타이틀로 ‘Fotografia’ ‘Insensatez’ 등 정통 보사노바를 완벽하게 재현했습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리듬과 선율을 담은 보사노바는 오후의 콘서트 6월 공연 <속삭이는 파도, 보사노바의 리듬>에서 만나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