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SEONGNAM
[성남의 예술가] 기획하는 시각예술인 황지희 | 몸을 구부려 세계의 밑면을 들여다보다
프로젝트 <ㄱㄱㄱㄱ: 산으로 간 배>의 작가들은 산에서 많은 것을 채집하지 않는다. 손바닥 위에 올라갈 크기의 돌, 작은 통 하나 분량의 흙, 이름 모를 나뭇가지가 전부다. 그것을 구워 목탄을 만들고, 흙을 갈아 안료로 쓰고, 균사체를 배양해 곰팡이를 피워 본다. 작업은 번번이 예상에서 벗어난다. 그럼에도 황지희 작가는 실패의 흔적까지 드러내며 묻는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걸까.
글 김호경 객원기자 | 사진 최재우
예술가의 시선에서 바라본 성남은 어떤 곳인가요?
분당구에 양지마을이 들어설 때 저희 가족도 입주했어요. 벌써 30년이 넘었네요. 제가 봐 온 성남은 도시와 자연이 교차하는 곳이에요. 공원이 정말 많거든요. 중앙공원에 가면 계절마다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고, 그 아래에서 풀과 흙이 살아 있다는 걸 느끼게 돼요. 특히 조카들과 동행하면 아이들은 쪼그려 앉아 도토리를 줍거나 벌레를 들여다보고 있어요. 어른들은 스마트폰을 볼 때조차 고개만 숙일 뿐인데 아이들은 땅속을 관찰하려 온몸을 숙이고 있죠. 성남은 그런 행동이 자연스럽게 가능한 도시예요. 굳이 깊은 산까지 들어가지 않아도 작은 녹지 안에서 다른 층위의 풍경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요.
앞두고 계신 프로젝트 또한 시선에 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히 산에서 재료를 가져와 작업하는 전시라기보다, ‘어떻게 접촉하고 어떻게 관찰할 것인가’에 대한 실험에 가까워요. 요즘은 데이터가 지나치게 방대하잖아요. 화면만 열면 무한한 자료가 나오고, 원하는 풍경도 금방 소비할 수 있고요. 그러나 그런 충만함이 실제 몸의 경험을 대신해 주지는 않죠.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걷고, 듣고, 보고, 채집하고, 기록하는 과정 자체를 작업으로 삼았습니다.
프로젝트 명칭인 <ㄱㄱㄱㄱ: 산으로 간 배>도 비슷한 맥락에서 비롯됐어요. ‘ㄱ’은 몸을 구부려 바닥을 응시하며 이동하는 산행의 자세입니다. 동시에 ‘ㄱㄱ’라는 말이 갖고 있는 출발의 감각도 있고요. 한편으로는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간다’라는 속담을 뒤집고 싶었어요. 다수의 의견이 새로운 경로를 개척해 준다는 긍정적인 뜻으로요.
현재는 금토산, 검단산, 청계산 등 성남 인근의 산들을 하나의 ‘현장 스튜디오’처럼 반복해서 오르고 있습니다. 풍경을 재현하려는 게 아니라, 각각의 산이 지닌 특성을 재료의 물성으로 구현해 보는 거죠. 공기의 습도나 흙의 입자, 빛의 방향, 미생물의 흔적 같은 요소들이 색감이나 결합 방식, 표면의 질감에 반영되도록 하는 거예요. 그래서 버섯, 돌, 흙, 나뭇가지 등을 소량만 채집하여 세척과 건조, 분쇄와 압착을 거쳐 안료, 시트, 그리고 균사 기반 조형 재료 등의 프로토타입으로 만들어 보고 있어요.
산에서 재료를 관찰하고 채집하는 황지희 작가
‘최소 채집의 윤리’를 지키고자 하시는 노력이 인상적입니다.
사실 최소 채집은 윤리적인 선언 이전에 몸의 문제이기도 해요. 산길을 오래 걸어야 하니까 많이 가져갈 수 없거든요. 몸이 무거워지면 집중하기가 힘들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손바닥 위에 올라갈 정도의 돌이나 작은 통 하나만큼의 흙만 가져오게 돼요. 산행도 되도록 왕복 세 시간을 넘지 않아요. 더 오래는 못 다니겠더라고요(웃음). 제게 채집은 수집보다 관찰에 가까워요. 최근에 숲해설가 선생님과 함께 산에 갔을 때 단순히 말라비틀어진 낙엽인 줄 알았던 뭔가를 자세히 보니 애벌레가 집을 지었던 자취더라고요. 그런 걸 알고 나면 무언가를 함부로 가져오는 일이 더욱 조심스러워지죠.
전시를 구성해 나가는 세세한 작업 과정이 궁금합니다.
드로잉이나 조형 작업은 산에서 가져온 재료를 변형해 새로운 물성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 중심이 됩니다. 나뭇가지를 구워 목탄을 만들기도 하고, 흙을 갈아서 안료처럼 사용하기도 하고요. 또 균사체를 배양해서 블록 형태로 만드는 실험을 하고 있어요. 버섯 배지를 활용한 작업도 계속 시도 중입니다. 반죽처럼 주물러 균사체를 만들어 미강이나 밀가루를 섞어서 24도의 실내에 사흘간 두면 천천히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고 며칠 후에는 더 하얗게 피어오르거든요. 그 위에 인두로 글씨를 쓰면 얼마 뒤에 파였던 부분이 다시 차올라요. 살아 있는 상태에서는 스스로 틈을 메우지만, 배지가 죽으면 더는 그 자국이 회복되지 않아요. 사운드 작업은 산의 지표면과 지중에서 채집한 소리를 바탕으로 합니다. 흙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소리나 개미가 지나가는 움직임 따위의 아주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죠. 결과를 고정하기보다 과정을 확장해 나가는 프로젝트라, 작업 방식도 유동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버섯 배지에 커피 원두 찌꺼기(커피박)를 섞어 반죽해 균사체 블록을 만들고 있는 모습
작업 중에 실패한 샘플도 공개할 예정이시라고요?
균사체 작업에서 실패는 빈번합니다. 온도를 잘못 맞추면 형태가 무너지기도 하고, 예상하지 못한 곰팡이가 피기도 하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이게 정말 실패인가?’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실패에는 다 이유가 있거든요. 어떤 온도에서 무너졌는지, 어떤 시점에서 변형이 일어났는지. 이런 것들이 전부 데이터로 쌓이는 거예요. 작년에 실패했던 샘플들도 버리지 않고 보관 중입니다. 어떤 환경에서는 흔적이 남고, 또 다른 조건에서는 사라진 것들이 이후 작업의 기준이 되어 주거든요. 다음 연구를 위한 표본이랄까요. 이번 전시에서 그런 실패의 흔적을 가감 없이 드러내려 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목적을 결과에 두지 않고 과정에 둔, 일종의 실험이니까요. 저희 작업이 ‘재료를 꼭 구매해서 작업해야 할까?’ ‘생산 프로세스를 바꿀 수는 없을까?’ 등의 질문을 던지는 시작점에 놓여 있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그 과정에서 생기는 실패 또한 숨길 이유가 없죠.
낙엽과 돌이 홍보에도 쓰인다는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습니다.
일상적이되 영구적이지 않은 홍보 형태를 고민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낙엽 위에 레이저 각인을 해서 QR 코드를 남기는 식으로요. 길에 놓아두었다가 누군가 발견하고,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거죠. 다만 낙엽은 표면이 일정하지 않아서 레이저 작업이 쉽지 않아요. 한동안 물에 적셔서 펴 놓기도 해 봤죠. 생각보다 손이 무척 많이 가더라고요. 돌의 경우 꿀이나 한천을 사용해서 비가 오면 서서히 사라지는 이미지를 남겨 보려고 해요. QR 코드에는 전시 정보 외에도 저희가 산에서 발견한 식생이나 채집 과정, 숲해설가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담아 볼까 합니다.
지난해 균사체를 소재로 사라짐과 폐기, 경계와 고립의 시대에 예술의 연결성을 탐구한 전시 <아무데도, 어디에나>
전시 관람 시 고려하면 좋을 사항이 있을까요?
사전에 짜인 서사가 아닌, 개인의 흐름대로 움직이며 관람해 주시면 됩니다. 그간 전시 동선을 엄격하게 정해 둔 적이 거의 없어요. 작품 앞에 누군가 서 있으면 당연히 다른 쪽으로 이동해서 보게 되잖아요. 그런 움직임이 새로운 시각을 부여할 수 있으니까요. 이번 전시도 어느 방향에서 시작하든 상관없이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도록 구성하려고 해요. 작가별로 공간이 나뉘지도 않을 겁니다. 동일한 작가의 작업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수도 있고요.
관람객들이 전시 이후에도 ‘들여다보려는 태도’를 견지하려면 일상에서 어떤 시도를 해 볼 수 있을까요?
그냥, 이유 없이 한 번쯤 쪼그려 앉아 봤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낮아진 시선으로 들여다보면 이전에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해요. 낯선 벌레도 보이고, 작은 식물도 보이고, 동시에 버려진 쓰레기도 보이죠. 그런 시도가 세상을 향한 감각을 조금씩 일깨워 줄 겁니다. 무엇이 함부로 버려지고 있는지, 무엇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려나 있는지를 알게 되거든요. 사실 저는 벌레 알레르기가 상당히 심해서 산에 오를 때마다 약을 잔뜩 챙겨 가요. 그런데도 매번 산에 가는 이유는, 일상에서는 접할 수 없는 감각들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에요. 도시와는 완전히 다른 색감이며 냄새, 습도 등을요. 자연은 불편하지만 깊숙이 들여다볼 가치가 충분해요.
작년 여름에는 의정부에서 열린 빼뻘 프로젝트에 참여하셨더라고요. 성남에서의 프로젝트가 지역의 자연에 집중한다면 해당 프로젝트는 지역의 생활에 주목하셨는데요, 이렇듯 ‘지역성’을 창작의 소재로 삼으시는 까닭이 궁금합니다.
빼뻘 프로젝트는 의정부 고산동에 있는 미군 기지촌에서 진행되었어요. 그곳은 미군 기지와 여성들의 삶,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마을입니다. 저는 그런 이야기들의 쉽게 지워지거나 잊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인권 활동가의 위치에서 누군가를 대변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존재했던 사건과 삶의 흔적들이 사라진 것처럼 잊히는 건 불편하더라고요.
저는 2024년부터 빼뻘 마을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당시 두레방(옛 성병보건소)이 사용하던 공간 이전 문제와 연결해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삽목 작업도 하고, 수락산에서 주운 돌을 깎고 갈아 보석처럼 가공한 반지를 만들기도 했어요. 또 지난해에는 집수리를 도와드리면서 나온 폐기물들로 설치 작업을 하기도 했고요.
이 과정은 지역의 서사를 빠르게 해석하기보다, 마을과 심리적으로 가까워지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특히 주민들이 제 작업 방식을 통해 저를 조금씩 받아들이는 경험을 하면서, 예술가 개인보다 예술의 방식 자체가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좁혀 준다는 걸 체감했어요. 제가 지역을 다루는 이유도 비슷한 것 같아요. 지역은 결국 누군가 살아온 시간과 흔적이 남아 있는 장소니까요.
성남 일대의 산에서 최소 채집으로 가져온 식물과 나뭇가지. 붓은 현장 채집 작업을 하는 데 필수품이다
앞으로 염두에 둔 소재가 있으신가요?
‘소재’라는 단어가 조금 무겁게 느껴지네요. 딱히 무엇을 다뤄야겠다고 정해 놓지는 않았어요. 단지 제가 놓치고 있는 게 무엇인지 항상 찾아보고 있죠. 대부분의 작업이 어떤 불편함에서 시작돼요. ‘왜 꼭 이렇게 해야 하지?’ ‘왜 이런 구조로만 움직이지?’ 따위의 질문들이요. 때로는 시민으로서 느끼는 불편함일 수도 있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다가 발견하게 되는 문제일 수도 있어요. 예술이라는 게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방향을 상상해 보는 과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마 저는 앞으로도 지역과 사람, 그리고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것들에 계속 관심을 두게 될 듯합니다. 묻혀서는 안 되는 것들, 너무 쉽게 외면당하는 것들이요.
작가님 개인의 행보도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바가 있으실까요?
저는 평소에 많이 돌아다니는 편이에요. 1년의 절반을 집 밖에서 보낸 적도 있어요. 직접 경험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영상으로 보는 것과 현장에서 냄새를 맡고 습도를 느끼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잖아요. 지인들은 혹한에도 캠핑하러 다니는 저를 보며 매우 활동적인 사람이라 말하는데, 실제로 저는 뭔가를 열심히 한다기보다 그저 가만히 들여다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해루질을 하겠다고 바다에 가서도 그냥 구경만 하고 있어요. 동료 작가가 “왜 그렇게 보고만 있냐”라고 물을 정도로요. 제게는 그런 시간이 소중해요. 그런 경험이 작업에 큰 영향을 줍니다. 그리고 그렇게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은 심리적 거점이 오랜 시간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살고 있는 분당 집이 귀환의 장소가 되는 것 같아요. 지금처럼 움직이고 경험하되, 다시 돌아와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황지희 작가는 2017년 유연한 예술단체 ‘프로젝트에이’를 설립한 후 다양한 예술가들과 협업을 이어오고 있다. 2026 성남예술인 예술창작활동 지원사업 시각·다원 부문 선정작 <ㄱㄱㄱㄱ: 산으로 간 배>를 송수영, 이다연, 홍근영 작가와 함께, 8월 15일(토)~23일(일) 성남아트센터 큐브플라자 아트×테크 창작랩에서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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