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잡이’라는 노래가 있다. 그룹 패닉이 데뷔 앨범 <패닉>(1995)에 담아 인기를 모았던 곡이다. 지금은 정도가 심하지 않으나 오래도록 이 나라에서 왼손 사용은 금기였다. 아이들은 왼손으로 숟가락을 들거나 젓가락을 쓰다 아버지나 집안 어른에게 혼나곤 했다. 강제로 오른손잡이가 된 애들도 많았다.
노래 ‘왼손잡이’는 왼손잡이라서 뭐 어떠냐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발표 당시에는 꽤 파격적인 노래라는 평가를 받은 걸로 기억한다. 왼손잡이라고 당당하게 밝히며 살아가겠다는 ‘선언’이 X세대 그룹답다는 의견이 따르기도 했다. 왼손잡이라서 혼나고 차별받는 건 이제 이곳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됐지만 말이다.
글 라제기 한국일보 영화 전문기자
1999년 한국일보 입사 후 편집부와 사회부, 국제부 등을 거치며 엔터테인먼트 팀장과 문화부장, 신문 에디터로 일했다. 2004년부터 영화를 취재해 왔으며 영국 서식스대학 대학원에서 영화학을 공부했다. 저서 『질문하는 영화들』 『말을 거는 영화들』, 역서 『할리우드 전복자들』로 영화를 사랑하는 독자들과 소통하는 한편, 뉴스레터 ‘영화로운’으로 매주 구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사진 제공 엣나인필름
지난해 11월 미국 영화 <왼손잡이 소녀>가 국내에 개봉했다. 할아버지로부터 “왼손을 쓰면 악마를 돕는 거”라는 악담을 줄곧 듣는 대만 소녀가 주인공이다. 소녀는 자신이 왼손잡이라 가족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긴다고 자책한다. 대만은 왼손잡이에 대한 편견이 여전히 심하다는 걸 알 수 있는 영화다.
대만은 우리와 문화가 비슷하다. 유교적 가부장제의 영향을 많이 받아, 사회 관습이 엄격하게 적용된다. 누군가 전통에 어긋나거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면 가혹한 벌칙이 따른다. 소수자는 배척당한다. 다수라는 보편성을 따르지 않으면 사회 질서를 어지럽힐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런 의미에서 왼손잡이는 여러 종류의 소수자를 대변하는 용어라 할 수 있다.
외롭고 혼란스러운 중학교 2학년
영화 <벌새>(2019)의 은희(박지후)는 중학교 2학년이다. 1994년, 서울에 사는 그는 여러모로 또래들과 다르다. 왼손잡이인 데다, 대치동에 살면서 공부보다 연애에 더 열심이다. 담임교사가 ‘날라리’ 색출 작업을 했을 때 걸릴 정도다. 이성을 사귀면서도 동성의 접근에 설렌다. 모든 것이 새롭고, 모든 것이 불안하며, 모든 것이 두려우면서도, 모든 것이 신기하다. 그러나 세상에 조금씩 눈을 떠 가는 사춘기 소녀라는 점에서는 또래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남들과 좀 다른 은희의 언행은 곧잘 비난의 대상이 되고, 제지당한다. 한 살 위 오빠 대훈(손상연)은 “(이성 교제로) 부모님 망신시키지 마라”며 은희를 때린다. 은희만 오빠에게 맞는 게 아니다. 은희의 절친한 친구 지숙(박서윤)은 구타로 입술이 터져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여자라서 해서는 안 된다고 여겨지는 일들이 있었고, ‘규칙’을 어기면 남자는 여자를 때려도 된다는 인식이 넓게 퍼져 있었을 때였으니까.
문제아 취급받던 은희에게 불량한 학원 선생님이 나타난다. 한문을 가르치는 서울대생 영지(김새벽)다. 그는 학원 건물 계단 창가에서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피운다. 게다가 은희처럼 왼손잡이다. 은희는 영지에게 호감을 느낀다. 외롭고 혼란스러워 괴로운 은희에게 영지는 인생길 안내를 위해 하늘에서 보내 준 인물만 같다.
‘서울대 대신’ 후배와 노래방에 가서 담배를 피우는 은희는 대치동에서 외계인 같은 존재다. 그의 집안 역시 마찬가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떡을 만들고 참기름을 짜 생계를 이어 간다. 시골과 달리 대치동에서 ‘방앗간 집’은 그 집안을 낮잡아 보는 꼬리표다. 은희의 언니 수희(박수연)는 대치동 고교에 진학하지 못해 강북 쪽 학교에 다닌다. 대치동 주류에 합류하고 싶은 아버지(정인기)에게는 2년 연속 학생회장을 한 외아들 대훈만이 희망이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맞은 은희는 누구보다 더 방황하는 듯하다. 은희는 다른 또래보다 더 혹독한 성장통을 겪고 있는 걸로 보인다. 주변 사람들과 너무나 다른 자신과 가족의 정체성 때문일까.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고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격동의 시대여서일까. 아니면 삶 자체가 원래 그런 것일까.
상처를 딛고 싸우며 혼자 걸어가는 삶
서울대에 들어가면 삶의 고민은 말끔히 사라지고 방황은 끝나는 걸까. 영지 선생님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은희가 “선생님은 자기가 싫어진 적 있으세요”라고 묻자, 영지는 “응, 많아. 아주 많아”라고 답한다. “자기가 좋아지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 같아”라고 말해 주기도 한다.
은희의 성장통은 오른쪽 귀밑에 생긴 멍울로 상징된다. 은희는 부모님이 아는 작은 병원을 홀로 다니며 치료를 받는다. 나중에는 큰 병원에서 수술까지 하게 된다. 의사는 얼굴에 마비가 올 수도 있고 큰 흉터가 생길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아버지는 걱정에 눈물을 흘리지만, 방앗간 일이 바빠 함께할 수는 없다. 은희는 외로이 병원에 머물다 혼자 집으로 돌아간다.
중학생 은희에게 세상은 온통 이해 불가다. 은희는 지숙과 한 점포에서 도둑질하다가 잡힌다. 가게 주인이 전화하자 은희 아버지는 “경찰서에 그냥 넘기라”고 말한다. 지숙은 은희의 신상 정보를 주인에게 밝히는 배신을 한다. 아버지도, 지숙도 믿을 수 없다. 은희가 학원 가는 길에 보는 철거민 현수막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곳에 사는 이들은 왜 자기 집을 뺏길 신세에 처한 걸까. 후배 유리(설혜인)는 “그냥 좋아요”라며 은희에게 사랑 고백을 하더니 새 학기가 되자 왜 모른 척하는 걸까.
부모님은 노래 ‘사랑은 유리 같은 것’의 가사처럼 험한 싸움으로 산산이 깨진 애정을 자녀들에게 보여 주는데, 다음 날에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태평하다. 노래 ‘칵테일 사랑’의 가사가 묘사하듯 세상은 낭만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잘린 손가락 바라보며 소주 한 잔을’(노래 ‘잘린 손가락’ 가사) 마셔야 할 정도로 냉혹하다. 세상이 이러니 ‘눈물’과 ‘등불’과 ‘벗’이 돼 줄 ‘여러분’(윤복희의 노래)이 절실해지는 게 당연한지 모른다.
은희는 중학교 2학년이라는 시기를 통과하며 조금씩 깨닫는다. 인생이란 상처를 딛고 싸우며 혼자 걷는 것이라고. ‘(내) 얼굴을 아는 이는 천하에 가득하지만 (내) 마음을 아는 사람은 몇 안 된다’고. “누구라도 널 때리면 꼭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을.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한다는 것”을. 그래서 “참 세상은 신기하고 아름답다”라는 것을.
은희는 일찌감치 세상을 떠난 영지 선생님의 가르침을 지도 삼아 ‘왼손잡이’의 삶을 잘 헤쳐 나갈 것이다. “힘들고 우울할 때 (자신의) 손가락”을 볼 것이고, “한 손가락 한 손가락” 움직여 볼 것이다.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은데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는 신비로움을 느끼며 그는 자신의 삶을 앞으로 밀고 나갈 것이다.
영화 <벌새>2019
감독 김보라
출연 박지후, 김새벽
사춘기 소녀의 성장통을 그린 영화 <벌새>는 7월 20일(월) 오후 2시 성남미디어센터 미디어홀에서 만날 수 있다.